“고산자 김정호를 소설 주인공 삼은 건 독자들의 꿈을 찾아주고 싶어서였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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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지식인 김정호를 주인공으로 한 역사소설 『고산자』를 쓴 소설가 박범신씨가 22일 ‘저자와의 만남’ 행사에서 “문학은 태생적으로 비주류에 관심을 갖게 되어 있다”고 털어놨다. [구희언 인턴기자]


소설가 박범신(63)씨는 1980년대 한국사회의 ‘문학적 우상’이었다. 감각적이고도 명징한 문체가 빛나는 그의 소설은 나오는 대로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런 그가 최근 대동여지도를 만든 고산자 김정호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 『고산자』(문학동네)를 냈다. 22일 오후 서울 대학로 서울연극센터에서 70여 명 독자와 만난 그는 집필 의도, 문학적 지향점 등에 관해 속내를 털어놨다. 서울문화재단과 본지가 공동주최한 ‘저자와의 만남’ 자리에서다.

“이룰 수 없는 꿈, 갈망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37년 작가 생활 중 처음 역사소설에 손댄 이유를 그는 ‘꿈’이라 풀었다. 온백성이 잘 사는 나라, 길을 잘 몰라 떠도는 사람이 없는 나라를 만들고자 한 김정호의 이룰 수 없는 꿈을 그리고자 사료를 뒤지고 작가적 상상력을 동원했다고 했다.

“흔히 꿈과 목표를 혼동하죠. 취직이나 결혼 등은 목표지 꿈은 아닙니다. 꿈은 이룰 수 없는 어떤 것이고, 갈수록 간절해지는 그 무엇이죠. 이 작품을 통해 독자들이 그런 꿈을 발견하도록 해주고 싶었습니다.”

그에 따르면 우리 문단에서는 이데올로기의 경계를 넘나들거나 인문학의 아우라를 업은 소설이 인기를 얻을 수 있다. “그걸 모르지 않지만 트렌드를 따라가는 것은 바로 문학의 죽음” 이라며 자기만의 문학세계를 지켜왔다고 고백했다. 1990년대 중반의 문학적 공백기와 관련해서는 “시대와의 불화, 다작에서 오는 내적 갈등에 시달리다 베스트셀러 작가로서의 기득권을 포기했던 것”이라 밝혔다. 그러나 그 일시적 절필로 해서 “문학적으로 자유로워졌고 작가로서 자부심도 커져 결과적으로 잘한 선택이었다”고 했다. “기득권에 얽매여 자신의 생각과 다른 삶을 살게 아니라 용기 있는 결정을 하면 큰 후회는 없을 것”이란 말도 덧붙였다.

결혼을 앞둔 여성독자가 조언을 구하자 “젊은 부부가 이혼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들이 과연 사랑의 몇 퍼센트나 보았는지 의심스럽다”며 인내를 강조한 뒤 “‘영원한 청년작가’가 이런 고루한 이야기를 하면 안 되는데…”라고 눙쳐 독자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저자와의 만남’에 ‘개근’하고 있다는 최순덕(56)씨는 “통속적인 작가라는 선입견을 깨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남편과 중학생인 남매까지 온가족과 함께 온 박현희(43)씨도 “시류에 영합하지 않는 그의 강직함에 반했다”고 즐거워했다.

김성희 기자, 사진=구희언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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