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가쟁명:유주열] 초우라꾸칸(長樂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중국 흑룡강성의 하얼빈은 여러 가지로 유명한 도시이다. 겨울에는 송화강의 얼음을 이용한 얼음축제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또한 과거 러시아 이민자들의 교회당이 많이 남아있어 “리틀 러시아”라고도 불리어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안중근 의사가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저격에 성공한 곳으로 유명하다. 지금도 하얼빈역에 가면 안중근이 이토를 저격한 위치가 표시되어 있다. 그때가 1909년 10월 26일로 금년이 100년이 되는 해이다.
우리 민족에게 악명이 가장 높은 일본인 두 사람을 꼽는다면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와 한일 보호조약을 체결케 한 이토 히로부미일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일본에서는 대단한 영웅으로 칭송받고 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을 실질적으로 통일, 중국을 제패한다는 허망한 야심으로 일본 정규군 20만을 부산에 상륙시켜 7년간 한반도를 유린한 장본인이다.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 헌법을 영국으로부터 도입하는 등 일본근대화의 주역이었다. 두 사람 모두 신분이 낮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노력으로 최고위까지 입신한 인물이었기에 더욱 인기를 얻고 있다.
젊을 때 영국에 유학하여 영어에 능통한 이토는 고베항이 있는 효고현의 초대지사를 역임하였고, 1907년에 이미 귀족원 의장으로 공작의 칭호까지 받고 있었다.
일본 교토(京都)에 가면 초우라꾸칸(長樂館)이라는 100년 된 서양식 건물의 호텔이 있다. 일본에서 가장 일본적인 것이 모여있는 교토에 유럽의 귀족, 미국의 대부호들이 찾아오자 그들이 체류하기 좋은 서양식 호텔이 필요하였다. 이토 등 당시 해외유학파 원로들은 무역으로 큰돈을 번 현지 실업인의 별장지에 서양인의 설계로호텔을 겸한 영빈관을 건축케 하였다.
1909년 5월에 오픈하여 이토가 직접 쓴 長樂館이라는 당호는 지금도 호텔 로비에 걸려 있다. 즐거움을 오래 오래 누리자는 당호와 달리 즐거움은 길지 못했다. 그 해 10월 하얼빈역에 도착한 이토는 안중근이 쏜 4발의 총성에 생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안중근은 자신의 詩처럼 하얼빈의 북풍은 차가워도 서른살의 뜨거운 피로 쥐새끼 같은 도적을 기필코 잡은 (必屠鼠賊) 것이다.

유주열 전 베이징총영사 = yuzuyoul@hotmail.com

※중앙일보 중국연구소가 보내드리는 뉴스레터 '차이나 인사이트'가 외부 필진을 보강했습니다. 중국과 관련된 칼럼을 차이나 인사이트에 싣고 싶으신 분들은 이메일(jci@joongang.co.kr)이나 중국포털 Go! China의 '백가쟁명 코너(클릭)를 통해 글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