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 보자’식 예산 알박기 중복·과잉 투자 계속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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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지도 못할 예산을 타내고, 남은 예산은 다른 데 쓰고, 중복·과잉 투자로 예산을 날리고-’.

옛날 얘기가 아니다. ‘예산 10% 절감’을 핵심 공약으로 내걸고 출범한 현 정부의 2008년 회계연도 결산을 최근 국회 예산정책처가 분석한 결과다. 정권 차원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나랏돈을 함부로 쓰는 백태가 여전한 셈이다.

송병철 국회 예산정책처 경제예산분석팀장은 “예산을 효율적으로 쓰겠다는 정부 약속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며 “예산 편성 과정부터 불요불급한 사업을 걸러내야 한다”고 말했다. 안종범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재정건전성을 회복하기 위해선 예산 낭비·중복 요인 제거 등 세출 구조조정을 1순위로 삼아야 한다”며 “기존 사업에 대한 엄격한 사전·사후 평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타내고 보자’식 예산 여전=지식경제부는 에너지 절감사업의 하나인 건물 인증 등급 인증 수요가 크게 증가했다면서 2008년 추경예산에 200억원을 증액했다. 그러나 인증을 받은 단지는 오히려 2007년보다 5건(69건→64건) 줄었고 사업 지원 실적도 감소했다(600억원→499억9700만원).

연근해어업 구조조정사업은 당초 1338억원이 잡혀 있었는데 추경에서 2350억원이 증액됐다. 그러나 이 중 실제로 집행된 돈은 1253억원에 그쳤다. 어선 감척 계획이 처음부터 무리였던 셈이다. 예산정책처는 해마다 집행실적이 부진한 사업이 155개로 지난해의 경우 총예산 3조2000억원 중 62.4%만 집행됐다고 밝혔다. 사전사업계획 미비(51개), 관계부처 간 협의 지연(24개) 등이 주된 이유다.

◆중복·과잉 투자=인천공항과 서울역을 잇는 인천공항철도는 수요 예측을 잘못해 2007~2008년 정부가 민간 컨소시엄에 수입보장금 명목으로 내준 돈만 2695억원이다. 앞으로 운영 기간(30년) 동안 예산에서 물어 줄 돈은 14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일례로 계약 당시엔 2031년 수요를 하루 평균 82만 명으로 잡았지만 재예측 전망치는 27만 명에 불과했다.

국방부의 군수통합정보체계사업은 당초 한곳에서 개발키로 했던 사업이다. 그러나 2005~2008년 육·해·공군 및 국방부 등에서 분리 추진되는 바람에 ▶프로그램 개발 ▶데이터베이스 엔진 ▶서버 ▶상용 소프트웨어 등의 구입비용을 네 곳에서 중복 지출해야 했다. 이로 인해 약 200억원(총사업비 313억원의 64%)의 예산 낭비가 발생했다고 예산정책처는 추정했다. 전력산업기반기금은 중장기자금 운용에서 842억원의 손실을 냈다. 자산운용지침과 달리 원금보장이 되지 않는 주가지수연계펀드(ELF)에 투자했다가 본 손실이 771억원에 달했다.

◆예산 절감 실적 과장=지난해 정부는 2조5568억원의 예산을 절감했다고 밝혔다. 절감 대상 예산 138조5431억원의 1.84%다. 그나마 여기엔 확정된 사업을 중단하거나 사업 시기를 연기한 것 등이 예산 절감으로 둔갑한 사례가 상당수 들어있다. 기상청은 적설자동관측망 구축사업에서 1억5200만원을 절약했다고 했으나 장비 도입이 늦어져 임차료를 집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청은 신용보증기관 출연금을 200억원 줄여놓고 예산 절감으로 간주했다.

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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