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줄 마른 평택 … “아이 학원도 끊었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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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이면 14개의 테이블에 손님이 모두 들어차던 이 식당은 쌍용차 파업사태가 벌어지면서 손님의 발길이 끊어졌다. 쌍용차 직원들의 회식은 사라진 지 오래고 인근 아파트 주민 손님들도 줄었다. 21일 기자가 점심을 먹으러 들어간 낮 12시15분부터 오후 1시5분까지 다른 손님은 한 명도 없었다. 직원이 식당 밖에 나와 앉아 있다. [평택=김성룡 기자]

20일 오후 8시 경기도 평택시 세교동 개나리아파트 앞 상가 지역. 쌍용차 공장 인근에 있어 쌍용차 직원들이 퇴근길 저녁식사나 대포 한잔을 해결하는 ‘먹자골목’이다. 하지만 인적이 뚝 끊겨 호프집·민속주점·회센터·커피숍 등 가게들의 간판만 을씨년스럽게 내걸려 있었다. 20여 개의 업소 중 문을 연 곳은 여섯 곳뿐이었다. 그나마 세 곳은 주인 혼자 빈 가게를 지키고 있었다. 10여 곳은 아예 불이 꺼진 채 셔터가 굳게 내려져 있었다. 문을 연 나머지 가게에도 한두 팀의 손님밖에 없었다.

30석 규모의 쌈밥집을 운영하는 지영주(47·여)씨는 “쌍용차 직원들 덕에 북적대던 가게들이 몇 달 사이 폐허가 되다시피 했다”고 말했다. 지씨는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월 900만~1000만원대를 올리던 매출이 요즘 절반에도 못 미친다”고 털어놨다. 쌍용차 직원들은 1월 회사가 법정관리에 들어간 뒤 3월부터 5개월째 봉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

주민 35%가 쌍용차 직원인 동삭동 이안아파트 앞 A미용실도 최근 매출이 절반으로 곤두박질쳤다. 사장 김모(31·여)씨는 “유심히 보면 머리를 묶고 다니는 아줌마들이 늘고 있다”며 “파마할 때가 돼도 남편 수입이 없으니 질끈 묶고 다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요즘 아줌마들이 낮에 일을 하러 나가기 때문에 손님 구경하기가 힘들다”고 덧붙였다. 학원가에도 학생들의 발길이 끊겼다. 동삭초등학교 앞 M영어학원 원장 박경선(40·여)씨는 “수강생 가운데 쌍용차 직원 자녀 10명 중 8명이 그만뒀다”고 전했다.

21년째 쌍용차 현장근로자로 일한 장모(47)씨는 카드로 생활비를 대다 결국 은행 대출을 받았다. 장씨는 “이대로 회사가 문을 닫으면 대출금 갚을 길조차 없어진다”고 불안해했다. 학원비를 못 낼 정도니 외식을 해본 지도 오래라고 한다. 장씨는 “초등학교 2학년짜리 둘째 애가 고기를 먹으러 가자고 조르자 6학년짜리 큰 애가 ‘아빠 돈 없어, 아빠 회사 다시 나가게 되면 외식하러 가자’고 달래더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현재 쌍용차 공장 입구엔 ‘쌍용차가 질주할 때 평택 경기도 살아난다’ ‘양보 없는 노사 싸움, 애꿎은 협력업체 결딴난다’는 주민들이 내건 플래카드가 펄럭이고 있다. 쌍용차와 협력업체에 근무하는 평택시민은 1만여 명이다. 가족들까지 4만여 명이 ‘쌍용 밥’을 먹고 산다. 41만 평택 인구의 10%에 해당하는 이들은 매달 70억원, 연간 840억원을 소비하며 지역경제를 지탱해 왔다.  

평택=박태희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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