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에세이]'퇴출폭우'뒤 행복한 무지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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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요즘 미국 기업체의 구인 담당자들 중에는 교도소를 찾는 이들이 꽤 있다.

사람 구하기가 쉽지 않은 탓이다.

최근 텍사스주 오스틴의 한 교도소에서도 이같은 일자리 설명회가 열려 적잖은 죄수들이 출감 후의 일자리를 미리 확보했다.

지난 여름 휴가철에는 젊은이들이 주로 모이는 해변에 기업들이 '베이스 캠프' 를 차려놓고 사람을 구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최근 주미 한국대사관은 오는 2000년대초까지 미국의 정보.컴퓨터산업 분야 인력이 크게 모자라니 우리 인력 육성.수출에 적극 나서는 것이 좋겠다고 본국에 건의했다.

사상 최저의 실업률이 (4.5%) 이 계속 유지되고 있는 미국의 일자리 사정을 말해주는 모습들이다.

그러나 불과 2년전인 96년 뉴욕 타임스가 펴냈던 베스트셀러 '미국의 다운사이징' 이란 책을 지금 펴보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뉴욕 타임스는 96년 3월 3일부터 9일까지 다운사이징이 몰고온 미국인들의 참혹한 실직사태를 생생하게 파헤치는 기획기사를 연재하고 이를 책으로 펴냈다.

어느날 직장과 가족을 한꺼번에 잃고 고속도로 안내소에서 관광객들의 팁으로 연명하는 처지로 몰락한 전직 은행대출 담당자의 이야기를 비롯, 80년대 이후 전 미국인 가정의 75%를 실직의 공포.고통 속으로 내몰았던 다운사이징을 리얼하게 그려낸 것이었다.

이제 세상이 바뀌어 미국 기업들은 출감을 앞둔 죄수들에게까지 찾아가 일손을 구하는 상황이 됐다.

최근 중앙일보의 기획취재는 가장의 실직으로 가정마저 파괴되는 일이 크게 늘어나고 있는 한국의 현실을 다뤘다.

그러나 뉴욕 타임스가 썼던 미국의 다운사이징에 비하면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

미국의 경험은 우리에게 위안이자 교훈이다.

불황의 터널 끝에는 희망이 있지만 그 희망은 대가를 치르지 않고선 현실로 다가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워싱턴=김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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