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 이기는 중소기업들]'기술동냥'으로 수출길 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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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금융 경색.원자재난에다 환율이 떨어지면서 수출 전선에 먹구름이 잔뜩 끼고 있지만 독자기술과 공격적 마케팅을 무기로 오히려 수출을 늘려가는 중소기업들도 적지 않다.

특히 일부 중소기업들은 선진국에서 얻어온 기술을 토대로 더욱 나은 기술을 개발, '기술 이전국' 으로 역 (逆) 수출하는 길을 열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충북 진천의 건설장비업체인 진성기계 (대표 崔哲成) 는 최근 일본 이시하라 (石原) 기계와 국내 최초로 철근가공기를 수출키로 계약을 맺고 납품을 개시했다.

진성이 개발한 철근가공기 '스틸맨' 은 건설현장 등에 사용되는 철근을 구부리거나 절단하는 제품으로 원래 전량 일본 등에서 수입했던 것. 崔사장은 지난 94년 '일본건설박람회' 에 참석했다가 동종기계의 상품성을 확인하고 곧 바로 개발에 착수, 일제기계 여러대를 거의 분해하다시피하는 등의 천신만고 끝에 국산화에 성공했다.

그러나 내수시장에서 채 자리를 잡기도 전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판로가 막히는 위기를 맞게 됐다.

이렇게 돼자 진성측은 지난해 말부터 필리핀등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진성이 '종주국' 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일본 시장 공략에 나선 것은 올 3월. 박경민 이사는 "2달여동안 일본측이 성능과는 무관한 외장 페인트까지 문제삼는 등 혹독한 테스트를 했지만 모두 통과한 덕에 올해에만 20억원 규모의 수출 물량을 확보했다" 고 밝혔다.

주식회사 대경 (대표 黃鎬淵) 은 기존의 PP (폴리프로필렌) 모델과 달리 열을 가해도 타지 않는 PVC (폴리비닐클로라이드) 재질의 가발원사를 개발, 세계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원래 펜싱지도자 출신인 황사장은 "원천 기술을 보유한 일본으로 무작정 건너가 퇴근길의 현지 기술진들로부터 '기술 동냥' 을 하는 등의 노력 끝에 품질은 일제와 거의 동등하고 단가는 오히려 10% 이상 싼 제품을 개발했다" 고 말했다.

처음부터 독자 브랜드로 밀어붙인 시장 공략 역시 쉽지 않았지만 일단 첫 거래에 성공하면서 전 세계로부터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올해 수출은 지난해의 배가 넘는 6백만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돼 최근엔 78명의 직원이 3교대로 공장을 24시간 풀가동하고 있다.

전화기 전문생산업체인 벨코 (대표 유희택) 는 '틈새 시장' 공략으로 세계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

재벌 전자메이커들이 장악한 일반 전화기 대신 헤드폰처럼 머리에 쓰고 사용하는 전화기 '헤드셋' 을 개발, 수출 전선에 뛰어든 것. 유사장이 헤드폰 형 전화기 수출로 승부를 걸게 된 것은 90년대 초 전자제품 유통회사인 미 탠디 (Tandy) 한국지사에 근무하면서 전화로 상품을 주문 판매하는 텔리마케팅이 가장 활성화된 미국의 시장성을 감지했기 때문.

"처음엔 선진국 제품을 거의 본뜨다시피할 정도로 기술이 부족했으나 지금은 미국 최대의 텔리마케팅회사인 프랜트로닉스사에 납품을 할 정도로 첨단 기술력을 보유하게 됐다. " (유사장) 소량으로 출발한 수출은 지난해 6백만불, 올해는 9백만불 이상 수출이 예약돼 있다.

벨코는 최근엔 국내최초로 아예 전화선까지 없애는 무선 모델을 개발, 미국 벨 브랜드에 수출을 개시하는 등 또다른 시장 개척에 여념이 없다.

표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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