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공장은 지금 전쟁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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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노조원(점선 안)들이 20일 오전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도장공장 옥상에서 보호막을 앞세운 경찰들을 향해 대형 새총을 쏘고 있다. [평택=최승식 기자]

20일 오전 10시5분쯤 경기도 평택시 칠괴동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수원지법 평택지원 법원집행관과 채권단 관계자 등 5명이 정문을 거쳐 노조원 600여 명이 점거 중인 도장공장으로 향했다. 퇴거명령 최고(催告)장을 강제집행하기 위해서다. 노조원들은 대형 새총을 쏘며 반발했다. 박건 집행관은 “세 차례 집행을 시도하려 했으나 불가능했다”며 한 시간 반 만에 철수했다. 지난 3일에 이은 이날의 2차 시도도 불발로 끝났다. 법원은 이날 노조원 강제퇴거가 이뤄지면 노조 및 제3의 출입 및 업무방해를 금지하는 경고문을 공장 건물 안에 공시할 계획이었다.

법원의 강제집행에 맞춰 경찰은 2000여 명의 병력을 공장 안으로 진입시킨 뒤 “점거농성을 풀지 않으면 강제해산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경고방송을 내보냈다. 도장공장 50여m 앞까지 접근해 바리케이드를 치고 노조원들과의 대치에 들어갔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굴절 사다리차와 소방차 등 소방장비 25대와 구급차량 6대, 헬기를 대기시켰다. 공장 출입문 4곳에도 병력 1000여 명을 배치했다.

이에 노조원들은 불을 붙인 타이어 10여 개를 정문 쪽으로 굴려보냈다. 도장공장 옥상으로 올라가 화염병을 던지고 대형 새총을 이용해 볼트와 너트를 쏴댔다. “공권력을 투입하면 대가를 치를 것”이라는 방송을 틀며 ‘항전’ 의지를 다졌다.

대형 새총에 넣어 발사한 500원짜리 동전 크기의 자동차용 볼트와 너트. [평택=최승식 기자]

오전 11시 본관 앞에 집결했던 회사 측 임직원 400여 명은 본관으로, 600여 명은 연구동으로 들어가 노조원들이 부순 책상과 집기류를 정리했다. 나머지 2000여 명은 쌍용차 안성시 공도읍 연수원으로 향했다. 회사 측은 공장 전체에 대해 단수 조치하고 가스 공급도 끊었다. “노조원들이 점거농성을 풀고 빨리 나오게 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오전 11시30분쯤에는 노조 정책부장 이모(34)씨의 부인 박모(30)씨가 자살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도장공장의 분위기는 더욱 격앙됐다. 이씨는 “경찰과 회사로부터 최근 소환장과 손해배상 서류 등이 집으로 배달돼 아내의 스트레스가 심했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숨진 박씨가 산후 우울증세를 비관해 자살한 것으로 보고 있다.

강희락 경찰청장은 이날 “당장은 노조가 점거하고 있는 도장공장에 진입할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도장공장 안에는 시너와 휘발유 등 위험물질이 많기 때문에 진입에 신중해야 한다”며 “사측이 업무를 재개하기로 한 본관과 연구동까지만 확보하면 된다”고 말했다. 경찰은 노조와 사측의 ‘완충지대’ 역할을 하기 위해 경찰을 공장 안에 계속 배치하기로 했다.

◆“도장공장은 화약고”=도장공장은 지상 4층, 지하 1층(연면적 5만959㎡)의 철근 콘크리트 건물로 공장 내 20여 개 건물 중 규모가 가장 크다. 1층은 1차 도장작업이 이뤄지는 공간과 시너 탱크와 페인트 탱크, 시너와 페인트를 섞어주는 탱크가 있다. 2층에도 사방에 페인트 탱크가 있다. 도장공장에는 페인트 작업을 위한 시너 3만3000L 등 모두 24만여L의 인화성 물질이 있는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마지막 도장을 한 뒤 조립라인으로 넘기는 대당 가격이 1억원이 넘는 로봇 34대도 설치돼 있다. 쌍용차 송승기 생산1부장은 “불똥만 튀어도 공장이 통째로 날아간다”며 “도장공장은 화약고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평택=박태희·장주영 기자 ,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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