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읽기 BOOK] 욕심도 결핍도 없는 유쾌한 원시, 아마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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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잠들면 안 돼, 거기 뱀이 있어
다니엘 에버렛 지음
윤영삼 옮김, 꾸리에
476쪽, 1만8000원

모험소설을 읽듯 몰입되다 언어학·인류학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에 부딪힌다. 믿음을 잃어가는 선교사의 모습에서 오히려 심오한 영성을 발견한다. 드물다. 이런 체험과 이론, 문제의식을 한 권에 담은 책이라니. 선교의 사명을 띠고 아마존에 정착해 30년을 살아 온 미국인 언어학자의 이야기다. 그는 열대 밀림 속에서 세상에서 가장 기이한 부족을 만난다.

제목부터 기이하다. “잠들면 안 돼, 거기 뱀이 있어.” 이는 ‘피다한’이라는 아마존 부족이 밤에 하는 농담 같은 인사말이다. 밀림 속에는 생명을 노리는 수많은 포식자가 있다. 넋 놓고 자다간 목숨이 달아날 수 있다. 그래서 피다한 부족은 깊게 잠들어봐야 2시간을 넘지 않는다. 보통 15분 정도의 토막잠을 잔다. 새벽 3시에라도 누가 물고기를 잡아 오면 바로 그 자리에서 다 먹어 치운다. 있으면 먹고, 없으면 굶는다. 그래도 밤새도록 마을 이곳 저곳에 모여 웃고 떠드는 유쾌한 부족이다.

아마존 밀림에 사는 피다한 부족의 아이들. 아이들이 젖을 떼고 나면 밤새 울어도 부모가 챙겨주지 않는다. 때리지도 않는다. 아이들도 어른처럼 일하고 책임을 진다. 그러나 어른이든 아이든 놀고 싶을 땐 논다. 젖만 떼고 나면 모두가 동등한 인간이다. [꾸리에 제공]

이 수다쟁이 부족의 말은 현존하는 다른 어떤 언어와도 연관성이 없는 유일한 언어라고 한다. 음소가 11개 정도밖에 없어 이 부족의 말을 처음 들으면 새나 들짐승의 소리로 여길 정도다. 최소한의 음소로 말을 만들기 때문에 단어는 한없이 길어진다. 사람 이름이 ‘꼬호이비이이이히아이’라는 식이다. 노엄 촘스키가 말하는 ‘보편문법’이 적용되지 않는 결락의 언어, 존재 자체가 언어학적 미스터리다.

문화 역시 독특하다. 저자는 말라리아에 걸려 죽어가는 아내와 딸을 데리고 황급히 도시로 향하다 부족으로부터 “통조림·성냥·담요 등을 사오라”는 부탁을 받고 충격에 빠지기도 했다. 나중에서야 깨닫는다. 이들의 문화는 죽음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아마존에선 삶도 죽음도 그 자신의 몫이다. 장례식엔 이웃은 커녕 가족조차 모이지 않을 때가 있다. 배우자, 자식이 죽어도 사냥을 하고 낚시를 해야 한다. 아무리 ‘원시적’ 문명이라도 있을 법한 종교적 믿음도 없다. 이들은 자신이 보고 들은 것, 다른 사람이 직접 보고 들었다고 자신에게 말해 주는 것 이외는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 성경 이야기를 하면 예수를 직접 봤느냐고 묻고, 처녀수태를 말하면 증거를 대라고 한다.

물질적인 것은 아무것도 축적하지 않는 이들, 하지만 결핍도 모르는 이들. 자연이 원하면 기꺼이 죽어주는, 그래서 삶도 욕심일 뿐이라는 생의 달관자들. 이들의 ‘아무 것도 없는 문화’를 이해하는 데 저자는 30년이 걸렸다. 우리들이 ‘아무 것도 아닌 문명’을 쌓느라 수천 년이 걸렸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피다한 부족은 ‘신도 진리도 없는 유쾌한 세상’으로 독자를 안내한다.

배노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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