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기막힌 사내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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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4잎 짜리 토끼풀은 3잎 토끼풀 무더기 속에서 찾을 수 있고, 괜찮은 영화는 수많은 범작들 중에서 나온다.

'기막힌 사내들' 은 기발하며 새롭다.

하고자 하는 말이 분명하며 그것을 전하는 방법과 모양이 독특하기 때문이다.

시나리오와 연출을 맡은 장진 감독의 개성이 그만큼 강하다는 뜻이다.

이 영화에서 감독이 사용하는 무기는 웃음. 한자락 접은 능청스러움이 주는 웃음은 사람들을 포복절도하게 뒤집기도 하고 뭉클하게 가슴을 치기도 하지만 결국 힘들고 지친 사람들을 따뜻하게 위로한다.

웃음 속에 오늘의 세상과 사람들을 담고 있는 것이다.

영화 속의 인물은 다양하다.

평생을 감옥에서 보내다시피 한 늙은 도둑과 그의 단짝인 국밥집 주인, 하릴없이 휘청거려야 하는 세상을 비관하며 자살을 기도하는 청년, 살인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우연히 현장을 지나는 바람에 용의자로 몰려 곤욕을 치르는 자동차 세일즈 맨 그리고 그들을 상대하며 큰 소리치지만 정작 범인은 잡지도 못하는 형사들…. 모두가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지만 누구도 주인공이나 승리자가 아니라는 점에서는 서로 닮았다.

모두가 패자일 수 밖에 없는 현실이지만 그래도 그 속에서 바둥거려야 하는 안타까움과 애절함에 대한 소묘는 결국 우리의 자화상처럼 보인다.

이 영화의 개성은 웃음을 전달하는 방식에서 더 크게 드러난다.

필요하다면 연극적 요소도 빌어오고 뮤지컬도 차용하며 개그같은 유머도 섞는다.

범인들이 주고받는 억센 사투리를 자막으로 처리하며 표준말로 뒤집은 역발상은 압권이다.

영화와 연극, 개그같은 요소들이 필요하다면 어느것이든 끌어오고 각각의 요소들은 필요한 대목에서 웃음을 날린다.

그러나 딸에게 구박받는 늙은 도둑이 지나치게 심각해지며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이나 뮤지컬 부분의 과잉연출 등은 영화의 톤을 흔들며 흐름을 방해한다.

옛사랑을 가슴에 묻어두고 있는 '반지낀 여인' 같은 캐릭터의 배치도 설명이 부족하다.

곳곳에서 생동하는 재능과 의욕은 놀랍지만 여전히 다듬어야 할 부분도 있다는 것을 노출하는 대목이다.

한국영화가 엄청난 물량과 화려한 특수효과를 앞세운 대작영화로 승부를 내자고 하지않는 한 반짝거리는 아이디어와 감각적 재능은 소중한 자산이자 희망이다.

'기막힌 사내들' 은 그런 점에서 기대를 던지는 영화다.

조희문 (상명대 영화학과 교수.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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