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종수의 시시각각

우리 교육의 불편한 진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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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우리 교육에도 그런 불편한 진실이 있다. 누구나 다 알지만 누구도 공공연히 입 밖에 꺼내지 않는 진실이다. 그것은 우리나라의 학교 교육이 대학입시를 위한 준비과정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사실 새삼스러운 얘기도 아니지만 이런 소리를 대놓고 하면 당장 교육당국과 학교 교사들부터 발끈할 것이다. 어떻게 신성한 학교 교육을 한낱 입시준비로 비하할 수 있느냐고. ‘참교육’을 내세우는 전교조는 더할 것이다. 모름지기 학교는 건전한 시민을 육성하기 위한 인격 도야와 지식 습득의 장이어야지 결코 입시 준비기관이어서는 안 된다는 뿌리 깊은 인식에서다.

그러나 실상은 이런 고상한 인식과는 전혀 딴판이다. 법에 있는 교육의 목적은 잠시 접어두고 실제로 왜 학교에 가는지를 한번 따져보자. 중학교까지는 의무교육이라 치고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학생의 대부분은 대학 진학이 목적이라는 게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특히 고교 졸업생의 84%가 대학에 진학하는 마당에 학교 교육을 대학입시와 떼놓고 생각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아무리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실상은 그렇다.

학교가 전인교육에 전념하고 입시교육과 담을 쌓는다면 사교육 근절은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공교육이 입시교육을 외면한 바로 그 자리가 사설 입시학원이 번성할 수 있는 공간이다. 흔히들 공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하지만 정작 공교육 강화의 핵심이 입시교육 강화라는 사실은 짐짓 모른 체한다. 전인교육은 좋고 입시교육은 나쁘다는 선입견에 빠져 그 불편한 진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 각광받는 ‘사교육 없는 학교’라는 것도 결국은 학교에서 입시교육을 제대로 하겠다는 것 아닌가. 자녀를 특목고에 보내려고 그토록 기를 쓰는 이유도 솔직히 대학입시에 유리하기 때문이 아닌가. 사정이 이러한데 사교육비를 줄인다며 정규학교에서 방과후 교습을 한다는 것은 본말이 뒤바뀐 처사다. 방과 후에 학원식 입시교육을 할 수 있다면 정규 학교수업에서는 왜 못하는가 말이다.

고등학교가 대입 준비기관이라는 사실이 심히 불편하다면 다른 나라도 다 그렇다는 데서 위안을 삼는 게 좋겠다. 미국과 영국에선 유명 대학에 많이 진학시킨다는 명문 사립학교에는 들어가려는 학생들이 줄을 섰다. 이름도 대입 예비학교다. 프랑스에서도 명문 고등학교들은 그랑제콜 진학생을 위한 대입 준비과정을 별도로 운영한다. 일본에서 고등학교 평가는 유명 대학에 몇 명이 진학했는가로 판가름 난다. 중국의 유명 대학 입시열풍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들 나라에서 학교가 입시교육을 외면한다는 얘기는 들어보질 못했다.

여기서 입시교육에 대한 오해가 하나 있다. 입시교육은 주입식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학생들의 창의성을 떨어뜨린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입시교육이 반드시 주입식일 필요는 없고, 주입식 교육이 항상 나쁜 것만도 아니다. 때로는 주입식 교육이 학력 향상에 효과적이라는 분석도 있다. 학교에서 입시교육을 포기한 후 학원교습을 통해 대학에 진학한 학생들이 과거 이른바 주입식 교육을 받은 학생들에 비해 창의력이 뛰어나다는 증거는 없다.

교육문제에 대해서는 전 국민이 전문가라고 한다.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다. 그러나 진실을 외면해서는 어떤 해법도 없다. 이제는 불편하더라도 진실을 대면할 때가 됐다. 학교에서 입시교육의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으면 우리 교육의 불편한 상태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김종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