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한국과 미국 뭐가 다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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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미국처럼 한국국민들에게 멀고도 가까운 나라는 없을 것이다.

바로 이웃나라인 일본.중국.대만보다 훨씬 더 우리에게 익숙해진 나라가 미국이다.

요사이 우리나라가 혹독한 경제위기에 시달리게 되니 귀국해 봐야 마땅한 직장을 찾기 힘들게 된 이곳 한국유학생들의 모습이 더욱 안쓰럽게 보이는 것은 필자의 기우 (杞憂) 만이 아닐 것이다.

우리 유학생들뿐만 아니라 금년에는 대기업까지 신규채용이 거의 없어져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한국의 많은 대학졸업생들의 처지 또한 안타깝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 미국경제는 지난 60년대 이후 최고의 호경기를 맞아 많은 회사들이 치열한 신규채용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번 방학때는 미국 대학생들이 휴가차 몰려든 여러 휴양지에 각 회사들이 텐트를 치고 구인 (求人) 경쟁을 벌였다.

개인 대 개인으로 비교하면 우리나라 국민들이 미국사람들보다 조금도 떨어지지 않건만 왜 두 나라의 경제형편이 이렇게 대조적일 수 있을까. 여러 가지 지정학 (地政學) 적이고 거시경제적인 측면을 떠나 필자가 지난 33년간의 미국생활을 통해 관찰해 온 한국 및 미국사회의 차이점을 대강 다음의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겠다.

첫째, 이곳 대학의 엘리트인 최우등 졸업생들은 미국정부의 관료가 돼 워싱턴으로 몰리지 않고 공과대학원.경영대학원.법과대학.의과대학 등으로 진학해 민간업계로 진출하는 게 보편화돼 있다.

한국의 수재들이 일본처럼 고등고시에 합격해 정부관료가 되는 것이 꿈이라면 미국에는 고시라는 제도도 없을 뿐만 아니라 꿈과 야심에 찬 미국 젊은이들에게 정부직장은 그렇게 흥미로운 대상이 아니다.

그래서 결국 최고의 두뇌들은 민간업계로 몰리게 마련이다.

둘째, 백악관 등 미국 행정부의 최고위직은 일본이나 한국처럼 평생 직업관료로 지내다 승진한 사람들이 맡지 않고 정부 밖에서 활동하다 영입돼 오는 것이 상례다.

예를 들어 현재 대통령비서실장은 자기 투자회사를 경영했던 사업가였고, 재무장관은 월가의 성공한 금융인이었으며, 재무차관은 경제학 교수였고, 중앙은행 총재는 경제자문회사를 설립해 컨설팅으로 성공했으며, 세계은행 총재도 월가에서 큰 돈을 번 금융인이었다.

기타 미국의 여러 중앙부처 장.차관급에는 직업관료 출신이 거의 없는 것이 특징이다.

이들은 자기가 몇 년 맡고 있는 정부의 고위직책을 평생 직업으로 생각하기보다는 자기의 원래분야에서 성공하게 만들어 준 미국사회에 대한 보답으로 잠시 봉사하는 정신으로 일하다 다시 본연의 직업으로 복귀하고 있다.

셋째, 미국의 저명한 신문기자나 방송의 앵커맨들이 한국처럼 기회가 되면 정치에 입문해 국회의원이 되거나 청와대나 정부요직으로 나가는 경우가 거의 없다.

미국의 언론인들은 자기 직업의식이 뚜렷해 권력욕의 허세에 차거나 권력선망형의 사이비 행동을 싫어하며 그 대신 정부의 잘못을 성역 없이 보도하고 비판하는 것이 예사다.

그래서 미국의 전통있는 신문들의 기사나 사설.칼럼들은 항상 생동감에 넘쳐 신선하게 느껴진다.

실로 미국언론의 영향력은 막강해 대통령도 이들 언론 앞에서는 절대로 방자하게 행동하지 못한다.

넷째, 미국의 대학교수나 지성인들은 정부의 '무슨 위원회' 감투를 쓰거나 또 그런 것을 넘보지 않고 철저하게 학자적 양식에서 자기 의견들을 가식 없이 발표한다.

이들은 지성인으로서의 긍지를 잃지 않고, 특히 행정부와 입법부의 잘못은 추상같이 공격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다섯째, 국회의 입법기능이 철저해 한국처럼 정부관료들이 기안한 법안을 놓고 형식적으로 토론하다 통과시키는 것이 아니라 국회의 해당부서 전문가들이 심사숙고해 입안한 내용을 공청회를 열어 철저히 검증한 뒤에야 통과시킨다.

그리고 통과된 법률의 시행은 행정부가 맡으나 그 평가를 완전히 독립된 사법부의 법관들에게 맡기는 것도 특이한 점이다.

마지막으로 미국의 중류사회는 미국의 할리우드 영화나 TV의 연속극에서 보는 흥미위주의 오락물에 비친 사회가 아니라 의외로 보수적이고 가정적이며 성실.근면하고 종교적이다.

미국사회를 잘 이해하고 그들의 영어를 거침없이 구사하려면 영어로 된 성경에 능통해야 할 정도로 미국사회의 많은 습관과 의식.언행이 성경의 표현들을 인용하고 있다.

미국의 이러한 장점들이 오늘날 특히 돋보인다.

박윤식(미국 조지워싱턴대 교수.국제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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