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눈높이 낮춰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5면

"기대치를 낮춰라."

탈북자 면접 경험이 풍부한 북한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충고다. 노력 없이 기대치가 너무 커 남한 사회에 적응을 못한다는 것이다. 탈북자들도 '소극적 태도''무능력''인내 부족' 등을 실패의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꼽고 있다.

북한 군의관 출신으로 한의사가 된 석영환(40)씨는 "한의사 시험에 떨어지고 생활이 쪼들릴 때 '내가 왜 왔을까' 후회하며 속으로 많이 울었다"며 "우선 탈북자들은 삶의 목표를 설정한 뒤 인내를 갖고 노력해야 남한에 적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2002년 입국한 함북 회령 출신의 J씨(50)는 몇달간 방황 끝에 지난해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취직해 1년 넘게 일하고 있다. 그는 "북한에서 전기기사로 일했던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며 "요즘은 조금씩 저축하는 재미에 산다"고 말했다.

문제는 알면서도 실천하기가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지방에 사는 한 탈북자는 "한달 열심히 일해야 100만원쯤 받는데, 솔직히 50만원 정도 되는 생계 보조비를 받으며 가끔씩 아르바이트를 하는 게 훨씬 편하다"고 말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탈북자들의 노력과 더불어 이들이 '연착륙'할 수 있도록 사회 시스템을 마련하고 분위기를 조성하는 작업이 병행돼야 한다. 지난해 1월에 입국한 M씨(여.53)는 "보험 설계사가 됐지만 연고가 없어 생활비조차 벌기 어렵다. 큰딸도 컴퓨터 자격증이 있지만 받아주는 곳이 없어 음식점 아르바이트를 한다"며 "취업 여부와 관계 없이 1~2년은 계속 정착 지원을 해 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성공회대 김귀옥 연구교수는 "탈북자 정착 프로그램을 연령.직업별로 다양화하고, 탈북자들이 편히 일할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탈북자들에 대한 편견을 줄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별취재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