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동포 5년 만의 '속죄 편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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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계 할인점 까르푸 서울 면목점 점장 스테판 투아네(37)는 지난 22일 대한해협을 건너온 한통의 편지(사진)를 받았다. 편지를 보낸 이는 일본 도치기현 고야마시에 사는 재일동포 이모(63)씨로, 워드프로세서로 작성된 두장의 편지와 함께 2만5000엔(약 25만원)이 들어 있었다. '까르푸 사장님께'라고 수신자를 밝힌 이 편지에는 5년 전 자신이 까르푸 면목점에서 무심코 저지른 절도행위를 뉘우치는 마음이 절절히 녹아 있다.

편지에 따르면 이씨는 5년 전 면목동에 사는 아들을 방문, 함께 면목점에 쇼핑 갔다가 순간적인 충동으로 샴푸 5개, 린스 2개, 내복 한벌 등 20만원 상당의 물품을 계산하지 않고 가지고 나왔다.

당시에는 공짜라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죄책감은 커져만 갔고, 이씨는 그 사건을 계기로 교회에 나가게 됐다고 한다. 이씨는 속죄하는 마음으로 불쌍한 사람도 돕고 하나님에게 매일 사죄 기도를 올렸지만 마음 한구석에 자리잡은 죄책감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이씨는 편지에서 "나쁜 짓을 한 사람은 반드시 피해자에게 사과해야 하며, 그것이 물질이라면 그대로 돌려줘야 한다는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감정이 북받쳤다"고 말했다.

그는 또 "훔친 물건의 액수에서 조금이라도 모자라면 속죄가 안 될 것 같아 5만원을 더해 25만원을 넣었다"며 "용서해 주신다면 지금 죽더라도 편히 눈을 감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투아네 점장은 "지난해 11월 한국으로 오기 전 세계 각국의 매장에서 근무하며 많은 일을 경험했지만, 이같이 감동적인 일은 처음"이라며 "한국인의 착한 심성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됐다"고 말했다. 까르푸는 이씨가 보내온 돈을 면목동 소재 노인복지회에 전액 기증키로 했다.

정현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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