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평화를 거부하는 세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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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영화 '마이클 콜린스' 는 아일랜드 독립운동가 마이클 콜린스의 비극적 생애를 다루고 있다.

이 영화는 1996년 베니스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그러나 영국에서는 인간백정을 옹호한 더러운 영화라고 배척당했다.

아일랜드인들의 기억 속에도 콜린스는 비열한 정치협잡꾼으로 남아 있다.

런던에서공무원생활을 하던 콜린스는 1916년 4월 24일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발생한 부활절봉기에 참가해 옥고를 치른 뒤 독립투사로 변신한다.

콜린스는 민족주의정당 신페인과 무장조직 아일랜드공화군 (IRA) 의 지도자로서 영국군에 대한 테러와 요인암살을 행하고 영국에 협력한 아일랜드인에게 무자비한 보복을 가했다.

마침내 영국이 아일랜드의 독립을 인정하는 쪽으로 선회하자 협상대표가 된 콜린스는 아일랜드가 영연방의 일원으로 남을 것과 아일랜드를 남과 북으로 나누는 타협안을 수용했다.

1921년 아일랜드 남부 26개군 (郡) 은 아일랜드자유국으로 독립을 얻었으나 북부 6개군은 합류하지 않았다.

국토분할에 반대하는 세력은 콜린스진영과 내전을 벌였다.

IRA 역시 정규군과 비정규군 둘로 갈라졌다.

콜린스는 이듬해 8월 반대파에게 암살당했다.

1949년 아일랜드는 영연방에서 탈퇴해 완전독립국이 됐다.

그러나 신교도가 다수인 북아일랜드는 영국에 남았으며 소수인 구교도에 대한 차별적 사회구조를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아일랜드가 통일된 독립국이기를 바라는 IRA는 지하활동을 계속했다.

68년 구교도 민권봉기를 계기로 북아일랜드는 내전에 빠져들었으며 지금까지 3천명이상이 희생되는 유혈참극이 계속돼 왔다.

IRA는신교도에 대한 폭탄테러활동을 벌이는 한편 영국 본토로까지 활동범위를 넓혀 나갔다.

이에 대해 얼스터의용군 (UVF) 등 신교도 무장조직들도 무자비한 테러행위로 맞서 피로 피를 씻는 보복전이 계속돼 왔다.

이런 가운데서도 평화적 방법으로 사태를 해결하려는 노력은 끈질기게 추진됐다.

지난 4월 극적으로 체결된 북아일랜드평화협정은 평화정착의 꿈을 부풀게 했다.

15일 발생한 폭탄테러로 북아일랜드 평화는 또 한번 위기에 봉착했다.

이번 사건은 IRA가 평화협정을 수용한 데 반발한 IRA내 과격파의 소행으로 드러나고 있다.

희생자 28명 중엔 어린이 9명, 부녀자 14명이 들어 있다.

북아일랜드에서 무고한 사람들의 희생이 끝날 날은 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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