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특사 출감 박노해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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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억압과 압제, 즐겁게 일하고 집에 돌아와 가족과 편안하게 지내려한 소박한 꿈마저 짓뭉갰던 그 짐승 같은 시간을 인간의 시간으로 바꾸려 야수 같이 싸웠다. 그 싸움이 서툴렀고 이념에 편향된 점, 그리고 이루어질 수 없는 세상에 대한 무책임한 약속에 대해 지난 8년간 나는 깊이 깊이 반성하고 나왔다."

'노동의 새벽' 과 노동 해방의 얼굴 없는 시인으로 91년 체포돼 처음으로 드러난 박노해의 모습은 이글거리는 눈빛의 반역자, 맹수 같았다.

그리고 7년 후 15일 경주교도소를 나서며 세상 만물에 합장하고 감사하는 그에게서 이제 투사의 모습은 흔적으로만 남아있었다.

"이제 상처투성이인 박노해라는 이름을 버리고 싶다.

예쁜 사람으로 아기자기하게 살고 싶다.

그러나 이 어려운 시절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과 나는 끝까지 함께 가려 한다. "

박씨는 양심수 석방 조건인 준법서약서도 앞장 서서 썼다.

법무부장관 앞으로 양심수 석방을 위한 탄원서도 '모든 정성을 기울여 구구절절하게' 썼다.

그리고 양심수를 만든 사람들과도 참사랑으로 화해하고 싶다고 했다.

사랑으로서 모든 사람을 보듬는 참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것이다.

82년 결혼 이후 백날도 함께하지 못했다는 부인 김진주씨는 "면회 후 그이만 놔두고 돌아설 때의 심경은 남들과 똑 같았다.

남편으로서의 무책임도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자신보다는 남, 공동체를 위해 감옥에서도 치열하게 공부하고 사색하며 몸과 마음을 세우는 그에 대한 존경심은 감히 져버릴 수 없었다" 며 그동안 남편의 글과 입이 돼 준 김씨는 이제 남편의 등 뒤에서 쉬고 싶다고 했다.

박씨는 서울로 올라오는 버스 안에서 그동안 감옥에서 종교.철학.경제.사회.문학 등 여러 분야의 책 1만권을 읽었다고 밝혔다.

이 공부를 통해 이제는 예전의 적과 동지의 구분을 아예 없애버리고, 이론이나 이념에 묶이지않고 폭넓게 세상을 전망하며 사랑과 희망을 이야기 하고 싶다고 말했다.

"연줄이 강한 우리 사회에서 내세울만한 연줄이 없어 고독했다.

그러나 나를 마중 나온 이 많은 분들을 연줄로 생각하니 힘이 생긴다.

우리 고통과 사랑을 함께 나누며 끝까지 사람에 대한, 사람다운 세상에 대한 꿈을 버리자 말자. 꿈 꾸는 자에게 꿈은 반드시 실현된다.

힘내십시오. 사랑합니다. "

경주 =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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