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빠진 증시에 선진국 경기회복 비관론 덮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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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더 이상 올라갈 동력(모멘텀)이 없으니,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13일 원화와 주가의 동반 급락에 대한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한동안 국내 증시를 지탱했던 2분기 어닝 서프라이즈(깜짝 실적)의 재료도 이날 해외발 악재 앞에선 무기력하게 무너졌다. 이날 코스피지수는 지난 3월 2일 이후, 코스닥지수는 4월 28일 이후 최대 폭으로 하락했다. 주가 하락의 단초는 최근 중국과의 관계 개선으로 크게 올랐던 대만 증시에서 날아왔다. 우리 시간으로 오전 10시에 문을 연 대만 증시의 가권지수가 큰 폭으로 떨어지자 외국인들이 국내 증시에서 현물(주식)과 주가지수 선물을 대거 순매도하기 시작했다. 가권지수는 지난 주말보다 239.04포인트(3.53%) 급락한 6530.82로 장을 마감했다.

13일 서울 외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한 직원이 주가와 원화값을 살펴보고 있다. 이날 코스피 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50.5포인트(3.53%) 떨어진 1378.12로, 달러당 원화가치는 32.3원(2.52%) 하락한 1315원으로 장을 마쳤다. [연합뉴스]


여기에다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들의 경기 회복에 대한 의구심이 또 다른 악재로 가세했다. 미국의 소비자신뢰지수가 예상보다 저조했고, 미국의 20대 은행인 CIT그룹이 파산보호 신청을 준비 중이라는 외신 보도도 외국인의 현·선물 동반 매도를 부채질했다. 2분기에 미국 기업들의 실적이 악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세계 증시에 큰 악재로 작용했다. 톰슨로이터가 S&P500지수 편입 기업에 대한 2분기 실적 전망치를 취합한 결과, 2분기 실적 발표 시기가 다가올수록 애널리스트들의 실적 전망치가 나빠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 결과 안전자산으로 분류되는 미 달러화와 일본 엔화 가치가 최근 크게 오르고 있다. 반면 국제유가를 중심으로 하는 원자재 가격은 큰 폭으로 떨어졌다. 특히 원유는 지난 6월 11일 배럴당 72.68달러(서부텍사스산 기준)에서 1개월 만에 59.89달러로 급락했다.

한동안 아시아 증시를 달궜던 디커플링(비동조화)에 대한 믿음도 흔들리고 있다. 세계 경제의 최대 엔진인 미국이 회복되지 않는 한 중국 단독으로 세계 경제를 이끌어가기에는 역부족이란 분석이 힘을 얻으면서 디커플링 기대가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김세중 신영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올 상반기 중국의 경기 회복은 순전히 정부의 경기 부양책에 따른 것이었다”며 “하반기에도 중국 정부가 강력하게 내수 부양책을 펼쳐나갈지에 대한 믿음이 약해지면서 디커플링에 대한 기대도 동시에 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국내 금융시장을 둘러싸고 있는 외부 환경이 악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지난 3월 초와 같은 주가와 원화 가치의 폭락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증권 전문가들은 대체로 코스피지수 1300선이 무너지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장인환 KTB자산운용 사장은 “지난 3월 중순 이후 주가가 급등할 때 투자 기회를 놓친 자금들이 주가의 조정을 기다리고 있다”며 “이 자금은 코스피지수가 1300선에 접근하면 증시에 뛰어들어 주가 급락을 막는 데 한몫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환율에 대해선 전망이 다소 엇갈린다. 올 들어 거액의 무역흑자가 나오고 있으므로 기초 여건만 보면 원화가치가 갑자기 폭락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환율은 주가의 움직임에 따라 출렁이는 것은 물론이고, 외부의 충격과 시중의 외화 유동성에도 큰 영향을 받으므로 안심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노상칠 국민은행 트레이딩부 팀장은 “전반적으로 금융시장이 조정을 받는 분위기이기 때문에 원화가치의 하락 추세가 당분간 지속될 수 있다”며 “달러당 1300원이 깨졌기 때문에 1350원 선까지는 더 내려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반면 김성순 기업은행 자금운용부 차장은 “지난해와 달리 외화 유동성에 큰 문제가 없는 상황”이라며 “당분간 달러당 1300원대에서 움직이다 다시 안정을 찾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희성·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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