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인터뷰]'홀뮴치료법' 개발 산파역 김병수총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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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간암에 관한 한국인의 자화상은 부끄럽다 못해 처절하다. 간암사망률 세계 1위. 매년 1만여명이 생명을 잃는다.

간암 고위험군으로 분류되는 간염바이러스 보유자도 4백만명으로 우리 국민 10명 중 1명이 간암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최근 홀뮴치료법이 화제가 되고 있다. 주사 한 대로 덩어리가 큰 말기간암까지 치료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이 연구의 기획에서 결과발표까지 산파역을 한 김병수 (金炳洙.62) 연세대총장을 만나봤다.

- 보도 이후 신촌세브란스병원엔 수백명의 간암환자들이 몰려들어 진료가 마비될 지경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발길을 돌리는 환자들이 많다고 들었는데요.

"홀뮴치료법이 모든 간암환자에게 쓸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복수 (腹水) 나 황달이 없어야 하며 암덩어리가 여러개로 분산돼 있거나 다른 장기로 전이되지 않은 상태라야 하지요. 간암환자 10명 중 3명 정도가 해당하지요. 따라서 환자들에게 병원을 찾기 전 이런 조건에 맞는지 알기 위해 CT사진을 지참하도록 권유하고 있습니다."

- 그렇다면 홀뮴치료법은 어떤 환자들에게 효과적입니까.

"지름 5㎝가 넘어 최소 3기 이상으로 분류되는 말기 간암환자입니다. 5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서 5~15㎝에 이르는 암덩어리를 녹여 없애거나 크기를 현저히 줄이는 데 성공했습니다.

지금까지는 5㎝ 미만일 경우 완치를 뜻하는 5년 생존율이 절반 가까이 되지만 이보다 커지면 10%도 못됩니다.

홀뮴치료법은 수술이나 간동맥색전술 등 기존치료법으로 효과를 보기 어려웠던 지름 5㎝ 이상의 간암을 완치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 홀뮴치료법이 개발됐을 때 지름 3㎝ 내외의 간암에만 제한적으로 사용된다는 것이 연구진의 설명이었는데요. 어떤 노하우로 5㎝ 이상의 간암까지 치료할 수 있게 됐습니까.

"지름 5㎝가 넘는 간암은 암세포에 영양을 공급하는 동맥으로 치료제를 주사해 치료합니다. 문제는 이 경우 치료제가 암세포에 들러붙지 않고 혈액을 타고 씻겨 내려간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엔 주로 크기가 작은 초기 간암만 치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연구진인 유내춘 (柳來春) 교수가 탄산수소나트륨을 이용해 혈액의 산도 (酸度) 를 낮춤으로써 치료제를 침전시켜 암세포에 들러붙게 한다는 아이디어를 고안해냈습니다.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값싼 화공약품인 탄산수소나트륨이 마의 5㎝ 벽을 넘어서는데 일등공신이 된 거지요. "

- 이번에 사용된 치료제는 홀뮴 - 키토산인데요. 키토산은 왜 필요한 것인가요. 또 홀뮴은 방사성동위원소인데 방사능 피해는 없는지요.

"키토산은 암세포 파괴보다 간암세포와 홀뮴을 연결하는 고리역할을 합니다. 정상세포는 그대로 두고 간암세포만을 선택적으로 파괴하기 위해 도입된 물질이지요. 홀뮴의 방사능 피해는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반감기가 26.8시간으로 매우 짧아 며칠만 지나면 대부분 체내에서 소실됩니다. 게다가 홀뮴에 의한 조직파괴도 투여된 곳에서 2.3㎜내에 한정되므로 정상세포의 손상은 미미합니다."

- 학계에선 5명에 불과한 임상시험 결과를 서둘러 발표했다는 비난도 있습니다. 의학적으론 이들 5명의 결과에 대해서도 재발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완치 (完治)' 보다 '관해 (寬解)' 로 표현해야 옳다는 지적이 있는데요.

"성급한 발표란 점에 대해선 의견을 달리합니다. 가치있는 연구결과이므로 하루라도 빨리 발표해 기존 치료법으론 완치를 기대하기 어려운 말기 간암환자들을 도와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용어의 선정엔 다소 신중치 못했던 것 같습니다. 완치란 치료 후 5년 동안 생존해 성공적인 치료가 이뤄졌음을 의미하는 용어지요.

관해란 여러가지 검사를 통해 암덩어리가 사라진 것을 확인할 때 쓰는 용어입니다. 관해가 돼도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잔류암세포가 남아 재발할 수 있다는 뜻이지요. 따라서 이번 시험결과를 정확하게 표현하면 완치보다 관해가 옳습니다.

다만 관해가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용어여서 쉽게 풀어 설명하느라 그렇게 됐습니다. "

- 암치료 개발보도는 신속한 정보 공급도 중요하지만 암환자와 가족들을 생각해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뉴욕 타임스도 동물실험만 마친 엔도스태틴을 기적의 암치료제로 대서특필해 일부에서 비난을 받기도 했는데요. 암치료 개발보도는 어떤 점에서 주의해야 할까요.

"옥석을 구분할 수 있는 가치판단이 중요합니다. 학문적으로 의미있는 연구결과라면 독자들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해 빨리 알려야겠지요. 그러나 사실을 객관적으로 기술하고 알기 쉽게 전달하는 것은 더욱 중요합니다.

암환자들에겐 생사가 달린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독자들의 눈길을 끄는 화려한 제목보다 정확한 가치판단에 입각한 사실보도에 힘써야 합니다."

- 인류는 5명 중 1명꼴로 암으로 생명을 잃고 있습니다. 종양학자로서 암정복의 미래를 어떻게 보십니까.

"암정복이란 말처럼 남용되는 말도 드물다는 생각입니다. 의학적으로 인간이 늙어가면서 암이 생기는 것은 필연이며 암의 완전한 정복은 세포손상과 노화란 본질적 생명현상의 이해와 맞물려 있어 암정복은 앞으로도 요원한 과제입니다.

첨단의학의 시대라지만 아직은 생존기간을 얼마나 더 연장하느냐에 불과한 정도지요. 결국 예방이 중요하다는 결론입니다. 한국인에겐 짠 음식, 불에 탄 고기류, 흡연과 간염이 시급히 개선해야할 발암요인입니다."

- 최근 과학계를 대표하는 한국과학기술자총연합회 차기회장으로 선출되셨는데 낙후된 국내 암연구를 활성화하기 위한 과제는 무엇입니까.

"신약개발에 주력해야 합니다. 암치료제는 1천가지 신물질 중 1개만 신약으로 허가될 정도로 어렵지만 일단 개발에 성공하면 황금알을 낳는 고부가가치 사업입니다.

지금까지 50억달러를 벌어들인 항암제 아드리아마이신이 좋은 예지요. 다행스럽게 이 분야에서 우리 국민의 잠재력이 풍부합니다.

생명과학 분야는 선진국의 막대한 첨단시설보다 연구자의 섬세한 손길과 끈기, 아이디어가 훨씬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만난 사람=홍혜걸 생활과학팀 기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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