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비님'의 심술 입니까 이제 그만 하소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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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집이 없어졌어요. " 텔레비전은 수마가 할퀸 길을 복구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군인들과 진흙탕물을 퍼내고 찬장을 씻거나 옷을 빠는 사람들을 비추더니 곧 흙탕물 줄기에 두 다리를 담근 채 넋이 나가 있는 아낙을 보여주었다.

이것은 기자가 아낙에게 "아주머니께서는 왜 그렇게 서 계십니까" 하고 묻자 그 아낙이 뱉어낸 말이었다.

그 아낙을 어떻게 감히 위로해드릴 수 있을까. 집과 논밭만 떠내려간 것이 아니다.

사람도 줄줄이 떠내려갔다.

이제는 '비' 라는 글자가 들어간 말만 들어도 온몸에 소름이 돋고 진저리쳐진다.

비련.비너스, '비바리 하소연' 이라는 노래 등등. 제 아무리 오묘하고 상쾌한 뜻을 가졌을지라도 '비' 자만 들어가면 싫다.

새벽 다섯시에 깨어 책상 앞에 앉아 있는데, 강낭콩 알 같은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윽고 "우르르르" 지축 흔드는 소리로 변했다.

게릴라성 비. 지리산 일대에서 한번 시위를 하고 난 이래 북한산과 속리산 일대에 거듭 심술스러운 폭우와 홍수 난리를 일으키고 있는 비님이 이제 무등산 일대로, 그리고 이곳 장흥 바닷가까지 옮겨온 것인가.

세상에서 가장 부드럽고 겸손한 것이 물이다.

산꼭대기나 등성이에 부어놓으면 가장 낮은 곳으로 몸을 낮추어 흐르고, 또 지하로 깊이 스며든다.

사실은 가장 무서운 것이 물이다.

한번 성을 내고 이성을 잃으면 악마가 된다.

회개하고 천국에 이르라고 가르치는 성경은 그래서 '노아의 홍수' 이야기를 동원했을 터이다.

불의 악마가 휩쓸고 지나간 마을과 산야에는 집터와 산과 논밭의 원형이 남아 있게 마련이지만, 물의 악마가 지나간 자리에는 집터나 논밭의 형체도 없다.

올 여름철 비님의 심술과 잔혹성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기상관측을 불가능하게 하고, 새벽녘에 기습적으로 한꺼번에 쏟아붓는 비님의 그 심술과 잔혹성은 어디에서 연유한 것일까. 기존 하수구나 개천이나 제방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도록, 그리하여 범람하도록 퍼붓듯이 내리는 저의는 무엇일까. 비의 신 앞에 우리 모두 머리 풀고 엎드려 빌어야 할까.

4천만이 모두 나서 비나리를 쳐야 할까. 어부들이 갑자기 돌풍을 일으켜 자기들의 배를 침몰시키곤 하는 용왕님에게 비나리치듯이. 부처님 모시는 절, 하느님 받드는 교회, 서낭신.칠성님 모시는 신당, 죄값 치를 만큼 다 치르고 저승간 자들의 무덤, 다리, 철길, 착하고 가난한 사람들의 집, 논밭들을 가림없이 허물어뜨리고 쓸어가버리는 잔혹스러운 그 비님에게 빌어본들 무얼 하랴. 엘니뇨와 라니냐로 말미암아 그렇듯 사나워졌다는 그 비님의 심술, 그것은 우리 인류 전체가 저지른 죄에 대한 준엄한 응징이 아닐까. 정작 그 응징에 착하디 착한 사람들만 당하니 가슴 칠 노릇 아닌가.

"제발 그만 내리시옵소서. " 아부아첨의 비나리가 먹혀들지 않으면 저항하는 수밖에 없다.

비님 때문에 좌절과 절망 속에 빠져 있는 우리 혈족들을 위해 무얼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은 우리들 자신뿐이다.

한승원(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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