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경제 통제불능 벗어났지만 GDP 성장률은 더 떨어질 수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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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경제가 아직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일자리가 더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로런스 서머스 미국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이 11일(현지시간) 파이낸셜 타임스(FT)와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는 “미국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아직 저점에 도달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도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닐 것”이라고도 말했다. 곧 발표되는 2분기 GDP 성장률이 전 분기 대비 소폭이나마 상승 추세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하는 시장의 기대와는 사뭇 다른 발언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매일 경제 현황을 브리핑하는 ‘경제위기의 관리자’ 서머스가 시장보다 더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최근 미국 경제의 성적표는 괜찮은 편이다. 지난 주말 미국 상무부가 발표한 5월 수출은 1233억 달러로 전달보다 1.6% 늘었다. 반면 수입은 0.6% 줄어 무역수지 적자는 전달보다 9.8% 줄어든 260억 달러를 기록했다. 1999년 11월 이래 적자 규모가 가장 적다. 달러 약세에 국제유가 하락이 겹친 덕을 많이 봤다. 경제 전망업체인 매크로이코노믹어드바이저스는 무역수지 개선을 근거로 미국의 2분기 GDP 성장률 전망치(전기비 연환산)를 기존 -1.6%에서 0.2%로 높여 잡기도 했다.

금융위기 이후 파산위기에 처했던 주요 기업들이 일단 위기를 넘긴 것도 긍정적이다. GM과 크라이슬러는 예정보다 빨리 파산보호를 졸업하고 새 출발을 했다. 공적 자금을 수혈받았던 월가의 대형 금융회사들도 금융시장이 안정을 찾으면서 정부 지원금을 조기 상환하고 이익을 내기 시작했다. 한때 벼랑 끝에 몰렸던 회사들이 이처럼 활기를 되찾는 것은 경제 사정이 그만큼 호전됐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서머스 역시 긍정적인 말을 하긴 했다. “시장의 공포심리와 경제상황의 급격한 악화는 진정됐으며 수개월 전과 같은 통제 불능 상황은 지났다.”

하지만 경기 회복 속도는 매우 더딜 것으로 보인다. 우리투자증권 박형중 연구원은 “미국 가계의 빚 줄이기(디레버리징) 추세가 적어도 2~3년은 계속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돈을 모아 빚을 줄이다 보면 소비가 위축된다. 미국 GDP에서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약 70%에 달하기 때문에 소비가 부진하면 경기 회복도 더딜 수밖에 없다. 게다가 금융 시스템이 무너진 탓에 금융회사의 대출 시스템이 아직 잘 작동하지 않고 있다. 가계의 저축이 쌓여 기업의 투자로 자연스레 이어지는 선순환을 기대하기는 아직 무리라는 얘기다.

최근에는 호텔·상가를 담보로 돈을 빌려 주는 상업용 부동산 대출(commercial mortgage)에 대한 연체가 늘면서 2차 금융위기의 진원지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미국 의회 캐서린 멀로니 합동경제위원장은 “내년 말까지 상환해야 하는 상업용 부동산 대출 규모가 7000억 달러에 이른다”며 “이를 계속 방치할 경우 또 다른 위기를 불러오는 ‘시한폭탄’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2차 부양책이 필요하다는 일각의 주장에 “현재로선 필요 없다”며 선을 그었다. 그는 “7870억 달러의 경기부양책은 의도한 대로 집행되고 있다”며 “우리는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서경호·손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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