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카메라 앞에, 존 레넌은 기꺼이 벌거벗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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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애니 레보비츠(60.사진)라는 사진가가 있다. 그 이름이 낯설어도 상관없다. 당신은 이미 그의 사진과 익숙하다. 임신한 데미 무어가 벌거벗고 배를 쓰다듬는 사진, 존 레넌이 몸을 둥글게 말아 오노 요코 옆에 누워 있는 사진이 그의 것들이다. 줄리아 로버츠, 브래드 피트, 조지 클루니, 아널드 슈워제네거, 클린턴 부부…. 이름을 늘어놓는 것도 별 의미가 없다. 미국의 거의 ‘모든’ 유명인이 그의 렌즈 속에 담겼다고 보면 된다. ‘롤링스톤’ ‘베니티 페어’ ‘보그’의 표지를 도맡아 온 그는 말하자면 셀러브리티 사진의 1인자요 대명사다.

다큐멘터리 ‘애니 레보비츠: 렌즈를 통해 들여다본 삶’은 40년 동안 인물사진을 찍어 온 여자에 대한 흥미 진진한 전기이자, 숱한 유명인의 다큐이자, 그가 겪어 온 시대에 대한 역사적 보고다. 그리고 당연히 멋진 사진의 전시장이다. 무엇보다 열정으로 자신의 일을 해 온 작가의 정신적 성숙의 여정을 따라가는 로드무비다.

공군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필리핀 기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차창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세상을 보았던” 생활 속에서 사진가로 성장한다. 영화 속에서 그의 사진 인생은 크게 세 시기로 나뉜다. 1973년 시작한 음악 전문지 ‘롤링스톤’의 시기가 첫 번째. 그는 록 그룹 ‘롤링스톤스’의 콘서트 투어에 동행하며 그들과 함께 부대끼고 뒹굴며 저널리스트로서의 원칙을 실천했다.

“가장 좋은 사진은 자신이 그곳의 일부가 되어 담겨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믿음이었다. 피사체들이 사진에 찍히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할 때까지, 레보비츠는 그들과 가까워지며 인간으로서의 그들을 파악하려 했다. “얼마나 버티나 보자”며 콧방귀를 뀌었던 믹 재거와 키스 리처드는 문짝에 팔이 끼여 수십 바늘을 꿰매야 했던 순간, 마약에 취해 널브러져 있는 장면 등 기억하지도 못하는 순간들을 잡아낸 여자에게 놀라며 감사해한다.

뭉클한 순간도 있다. 10년 만에 유명 작가로 성장한 그와 재회한 존 레넌과 오노 요코는 부모처럼 자랑스러워했다. 연출하지도 않았지만 레넌은 스스럼없이 옷을 벗었고 긴 머리를 늘어뜨린 아내 옆에 누워 웅크린 채 그녀의 뺨에 입을 맞추었다. 네 시간 후, 레넌은 총에 맞아 세상을 떠났다. 레보비츠와 ‘롤링스톤’은 아무런 제목이나 설명 없이 그 사진만 실린 표지를 내놓는다. 어떤 말보다 강렬한 추모였다.

‘베니티 페어’라는 대중잡지로 옮긴 그의 사진은 더욱 실험적이고 장식적이 된다. 비행기와 서커스 장치를 동원하고 우피 골드버그를 우유 욕조 안에 빠트린 그는 스타를 힘들게 하기로 유명했다. 그러나 결과물은 모두의 두 손을 들게 했다. “스타를 불러들이려면 애니 레보비츠의 이름을 이야기하면 된다”고 할 정도로 명성은 높아만 갔다.

그러나 결정적인 전환은 뉴욕 최고의 지성인 수전 손태그를 만나면서부터다. 그녀의 영향으로 전쟁터의 사람들을 찍기 시작하고, 쉰의 나이에 얻은 아이들과 가족을 찍기 시작한 그의 사진은 다시 소박해지고, 화려하지 않은 인간의 또 다른 아름다움을 담아 낸다.

그렇게 많은 사람의 사진을 찍어 왔지만 사진에 대한 그의 생각은 의외로 겸허하다. “우리는 사람의 아주 일부분만을 찍을 수 있다. 그것은 그의 최고의 순간일 수도, 그저 어떤 한순간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사진이란 별것 아닌 것을 별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이라는 말과 함께 들으면, 역시 거장들의 진리는 단순하다는 생각이 든다. 동생 바버라 레보비츠가 다큐멘터리를 연출했다.

중앙극장·압구정 스폰지 하우스에서 상영 중.

이윤정 객원기자 filmpo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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