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만 잘해서는 야구로 성공할 수 없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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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호 16면

며칠 전 한 TV 방송과 인터뷰를 했다.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한 박찬호의 성공 비결에 대해 말하는 내용이었다. 방송에서는 그가 다른 선수들과 무엇이 달랐는지 궁금해했다. ‘인사이드’도 20년 가까이 그를 지켜봤지만 딱 부러지게 “이거다” 하고 끄집어낼 뭔가가 애매했다. 한동안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옳지!” 하고 무릎을 쳤다. 언젠가 그가 한 말이 생각나서였다. “야구를 잘하기 위해서는 야구만 열심히 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라는.

이태일의 Inside Pitch Plus <117>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지만 곱씹어 보면 메시지가 분명한 말이었다.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메이저리그라는 무대는 전 세계에서 야구깨나 한다는 선수가 모두 모이는 곳이다. 투수라면 누구나 150㎞가 넘는 공을 던지고, 자신 있는 변화구 두세 가지는 갖고 있다. 그들과의 경쟁에서 이겨 기회를 잡고, 그 주어진 기회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야구만 잘하려고 덤벼서는 안 된다. 내가 갖고 있는 것(공)을 얼마나 ‘잘’ 발휘할 수(던질 수) 있느냐에 대한 지혜, 위기를 다루고 이겨 나가는 용기, 상황에 따른 단호하고 현명한 판단, 동료와 바른 의사소통을 하기 위한 지식 등이 동반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포수만 보고 무작정 던져대는 160㎞의 공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150㎞의 공을 160㎞로 만들려는 노력이 아니라 150㎞의 공을 현명하게 던지려는 노력을 했다고 한다. 코칭스태프를 비롯한 동료와 의사소통하기 위해 영어를 적극적으로 배우고, 상대(주로 미국인이니까)의 성향에 익숙해지기 위해 미국 문화와 습관을 몸에 익혔다. 독서와 명상을 통해 지식을 얻고 마음을 다스렸다. 좋은 글귀가 있으면 메모하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편지를 보내거나 일기를 쓰면서 논리적인 사고를 다듬었다. 이런 노력들이 모여 그를 공만 잘 던지는 투수가 아니라 경기를 잘하는 투수로 만들었다는 거다. 그리고 나아가 충실한 삶을 사는 바른 인간으로 이끌었다는 거였다. 그렇게 그는 야구에서만 메이저리거가 된 게 아니라 생활에서, 인생에서 우월한 존재가 되었기에 비로소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할 수 있었다는 거였다.

그 말을 듣다가 한국 프로야구로 고개를 돌렸다. 이제 태어난 지 스물여덟 해. 2년 뒤면 30년을 맞는 우리 프로야구가 아직도 ‘야구만 열심히 하는’ 그 수준에서 맴돌고 있는 게 아닌 가 해서다. 그저 치고, 받고, 달리는 걸 잘하려는 노력만 하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거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과 올림픽을 통해 국제경쟁력을 확인하고, 500만 명이 넘는 관중을 통해 리그의 흥행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그런 수준이라면 150㎞의 공을 160㎞로 던지려는 노력에 더 가깝지 않을 까 하는.

그래서 유영구 총재와 신임 이상일 사무총장 시대에는 ‘리그의 품위와 가치를 높이는 노력’에 대해 고민하고, 그런 시도에 열정을 쏟아부었으면 한다. 한국프로야구가 ‘한국에서 야구를 가장 잘하는 팀을 뽑는 대회’가 아니라 국민적 여가로서의 가치를 지닌 문화의 한 축으로 거듭나기 위한 고민과 노력 말이다. 그런 고민과 노력을 통해서만이 우리 프로야구가 단순한 경기 이상의 가치를 가질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되어야만 프로야구가 건강한 정신과 인생의 교훈을 논할 수 있는 장(場)으로 한 단계 올라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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