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 세상보기]환경의 신이 복수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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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그러니까 제가 남극의 하늘에 조그만 구멍을 냈을 때부터 당신들은 주의를 기울여야 했습니다.

오존 홀이라는 이 구멍은 1957년 영국의 과학자들이 처음 관측하기 시작한 것인데 최근에는 제가 이것을 아메리카 대륙의 절반 크기로 키워 놓았습니다.

오존층에 구멍이 뚫리면 태양의 자외선이 직접 피부나 눈에 와 닿습니다.

그러면 피부암과 백내장은 몇 배 더 늘어납니다.

당신들은 부랴부랴 몬트리올 의정서를 만든다, 냉매 (冷媒)가스 생산을 중단한다 법석을 떱디다.

정신을 차릴 기회는 또 있었소. 내가 엘니뇨.라니냐 현상을 자주 내비치자 당신들은 바짝 긴장합디다.

바닷물이 더워지고 해수면이 높아지고 조류의 방향마저 바뀌는가 하면 홍수와 가뭄, 어떤 때는 냉해 (冷害) 까지 일으키는 변덕 기후의 원인은 지구 온난화 때문이라고 진단합디다.

이미 남태평양의 환초 (環礁) 섬들 몇 군데는 바닷속으로 사라졌소. 이대로 가면 뉴욕 같은 낮은 항구는 물에 잠길 것이오. 북극의 빙산이 나날이 바닷속으로 꺼져 내리는 모습, TV로 생생히 보고 있잖소. 그런데도 당신들은 어느 나라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더 삭감해야 하는지를 놓고 선.후진국으로 갈려 싸움질만 합디다.

최근에 열린 두 차례의 지구환경회의 - 92년 브라질의 리우, 97년 일본의 교토 (京都) - 는 당신들의 싸움터로 전락하지 않았소. 방글라데시의 폭우, 양쯔 (揚子) 강의 범람, 미국의 불난리, 지리산과 경기도의 게릴라성 집중호우는 다 나의 앙갚음이오. 당신들은 그동안 개발과 성장이란 명분 아래 내 피부를 찢고 할퀴고 내 먹을 물을 더럽히고 숨 쉴 공기를 탁하게 만들었지 않소.

그런데도 말을 안 듣는구나. 정신 못 차리는 인간들아, 드디어 나는 환경호르몬으로 인간이란 종자의 씨를 말리련다.

썩지 않는 포장은 그만 사용하라고 내가 몇 번이나 얘기하지 않던. "아니 갑자기 말씀이 거칠어지십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 "나? 나는 환경의 신 (神) 이다. 나는 복수하는 신이다. " "그런 신은 그리스.로마 어디에도 없던데요. " "20세기 신화에서부터 새로 등장하는 어르신이다. " "왜 그렇게 화를 내십니까. "

"내가 지금 막 화를 낸다고 너희들이 벌벌 떨어도 그 순간뿐이야. 다음번 재앙이 닥칠 때까지 내 존재를 까맣게 잊어 버릴 것이 뻔해. 뭐 인류문명은 자연정복의 역사라고? 세계인구가 겁도 없이 늘어나 이젠 60억명이나 된다고? 그 많은 인구가 먹고 살자니 환경의 신인 나를 무시하고 덤빌 수밖에. 이제 나도 내 생존을 위해 인간을 멸해야 겠어. 우선 내가 할 일은 물을 퍼붓는 일이야. 그 아래서 쓸리고 무너지고 파묻히는 것은 다 너희들 스스로 하는 짓이야. "

"정말 다 멸하시렵니까. " "너희들은 우주선을 지어라. 길이 1백37m.높이 13m.폭 23m의 크기로 말이다.

우주선 이름은 방주 (方舟) 호라 지어라. 컬럼비아호니 미르호니 하는 것은 건방져 안돼. 그리고 모든 생물의 암수 한 쌍씩을 태워라. " "정치인도 태웁시다. 어디서건 정치는 해야 되니까요. "

"정치인은 환경의 '환' 자도 몰라서 안돼. 지구상에서 탄산가스를 제일 많이 배출하는 나라의 대통령은 지금 뭘 하고 있나. 또 지퍼를 내리고 있나. " "그럼 기업인은?" "기업인은 내 눈치를 보느라고, 내 눈을 속이려고 무진 애를 쓰는 사람들이야. 안돼. "

"그러면 보통 사람을 태웁시다. 저를 태워 주실 거죠? 제 이름은 김성호, 국적은 한국…. " "까불지마. 천주교 대구교구의 정홍규 (鄭洪圭) 신부가 환경신학을 연구한다더라. 나 환경의 신을 신학의 연구대상으로까지 높이는 그 사람이야말로 나의 노아가 아니겠느냐. "

김성호(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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