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리의 그린수기]22.짧지만 화려했던 국내프로생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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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96년 4월 프로에 입문한 뒤 삼성이 마련해준 분당아파트로 이주하면서 시작된 나의 국내 프로생활은 짧았지만 화려했다.

이듬해 1월 미국으로 떠나기까지 11개 대회에 출전해 우승 4회.준우승 5회의 기록을 남겼다.

그러나 프로데뷔 첫해는 희망과 좌절을 동시에 안겨준 해였다.

특히 초기 4개월 동안은 가장 부담스러웠던 시기였다.

여러 차례의 우승을 하고도 울지 않았던 나는 그해엔 오히려 우승을 못해 억울한 눈물을 남몰래 흘린 적도 많았다.

95년 오픈대회 4관왕.아마대회 3관왕 등 골프계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프로로 전향한 나는 초반 세 차례나 좌절을 맛봐야 했다.

데뷔 후 출전한 4개 대회 중 크리스찬디올오픈.대구매일오픈.유공인비테이셔널 등 3개 대회에서 2위에 머물렀다.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그때 마음을 졸이며 잠도 제대로 못 잤다고 회고하신다.

나는 "내가 못하는 게 아니라 다른 선수들이 너무 잘해" 라며 너스레를 떨었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

사람들은 내가 우승에 너무 집착하기 때문이라거나 아마추어 때와 달리 상금을 너무 의식하는 게 아니냐는 등 나름대로 부진에 대한 진단을 내렸다.

나는 그런 것을 의식하진 않았고 단지 골프가 이상하게 풀리지 않았을 뿐이었다.

'2위 징크스' 에 시달렸던 내가 프로데뷔 첫 승을 올린 것은 그해 8월 동일레나운클래식대회였다.

이후 휠라여자오픈.SBS최강전 제패로 3주 연속 우승기록을 수립했고 서울여자오픈 등 4개 대회에서 우승하자 언론에서는 연일 나를 대서특필했다.

그해엔 대회 수가 유난히 많아 나는 총 2억1천8백만원의 상금을 벌어 국내 여자골프 사상 처음으로 시즌 상금 2억원을 돌파한 골퍼로 등록되기도 했다.

그해 10월의 삼성월드챔피언십대회는 나에게 가장 의미있는 대회였다.

미국여자투어 중 하나인 이 대회에서 나는 우승자인 애니카 소렌스탐에게 3타 차로 공동 3위를 차지했다.

당시 사람들은 소렌스탐.캐리 웹.리셀로테 노이만 등 세계적인 선수들과 겨뤄 3위를 차지한 것만도 훌륭하다며 나를 위로했다.

그러나 우승을 놓쳐 너무 억울했다.

경기 후 기자실에서 인터뷰 도중 눈물이 쏟아졌다.

그때 친분있는 기자분이 "세계적인 선수가 될 사람이 눈물을 보여서야 되겠느냐" 며 따끔히 충고하는 바람에 눈물을 멈춘 기억이 난다.

그러나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나는 그 다음 주 시즌 마지막 대회인 한국여자오픈이 열릴 한양골프장 근처에 방을 잡았다.

그리곤 눈물이 마를 겨를도 없이 다시 새벽부터 일어나 맹연습을 했다.

그때는 아버지도 내가 안쓰러웠던지 연습을 만류했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패배의 상처를 씻는 방법은 나를 지쳐 쓰러지게 만드는 고된 훈련밖에 없기 때문이다.

삼성월드챔피언십은 나도 세계적인 선수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대회였고 그것은 현재의 내가 있게 만든 마음속의 소중한 재산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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