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너그러움과 해학' 정양모 지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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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조선 중기에 만들어진 백자달항아리. 입과 몸체와 굽이 혼연한 조화를 이루며 마치 자연이 잉태해놓은 것과 같은 신기 (神技)가 느껴진다.

그런데 이 자연스러움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조선 초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한 백자항아리가 조금씩 변형돼 세월이 흐르면서 우리 산하와 생활과 심성에 꼭맞는 항아리로 태어난 것이다.

정양모 국립중앙박물관장은 평소 우리의 생활과 문화가 자연과 하나 됐을 때 가장 아름답다고 확신해 왔다.

미술도 예외는 아니어서 그는 한국미술을 자연과 어우러져 자연과 같이 되고자 하는 바람의 소산으로 생각했다.

신간 '너그러움과 해학' 에는 이같은 그의 지론이 알알이 담겨있다 (학고재刊) .지난 62년 박물관에 들어와 한평생을 문화재 발굴과 연구에 보낸 그의 독특한 미술관을 맛깔스런 문체로 정리했다.

책에는 그의 '주전공' 인 도자기에 관한 글이 다수 실려있다.

청자.분청사기.백자 등등. 특히 백자에 대한 해석이 관심을 끈다.

오직 흰색 하나로만 극도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일은 조선 도공만이 도달한 열반의 경지라는 것. 물론 여기에는 세상 명리와 상관없이 자신의 소신과 절개를 지켜나간 조선 선비들의 사상이 깔려있다.

저자는 또한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 단원 김홍도의 풍속화, 일본에 있는 고려다완 등을 당대 사회의 변화와 함께 자세히 설명한다.

오지그릇.질그릇.옹기.장독대 등 일반 서민과 동고동락한 생활용품들도 빠뜨리지 않고 소개한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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