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에서]미국인의 진실 밝히기 노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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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요즘 같아선 미국이 스캔들과 음모론으로 가득 찬 나라인 듯 하다.

겉만 보면 그렇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밑바탕에 미국인들의 치열한 진실 밝히기 노력이 깔려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그 긴 호흡에 놀라게 된다.

빌 클린턴 미 대통령 스캔들과 관련, 수사에만 4년 이상이 흘렀고 특별검사의 활동에 들어간 돈도 4천만달러에 이른다.

명쾌한 결론없이 국민세금이 쓰인 데 대한 비난도 있지만 법적으론 아무런 문제가 없다.

게다가 30여년이 지난 케네디 대통령 형제와 마틴 루터 킹 목사 암살사건이 이제 와 재조명되면서 진상을 다시 파헤쳐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이렇듯 각종 스캔들이 끊임없이 일반에 공개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극성스런 언론과 시민들의 고발정신, 언젠가는 자기 발등이 찍힐지 모르면서도 꾸준히 기록을 남기는 공직자들의 자세가 합쳐진 때문인 것 같다.

우리의 경우 이러저런 이유로 폭로기사에 몸사리는 언론과 자기보호를 위해 자서전을 남기지 못하는 풍토 때문에 역사 바로잡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저 힘있는 자들의 이익추구를 위한 자의적이고 한시적인 '졸속 역사캐기' 가 있을 뿐이다.

지난 날의 경제운용 방식에서 비롯된 금융위기의 책임을 묻는 방식이나 한.러 외교갈등을 봉합하는 과정에서 사태의 진실을 낱낱이 밝혀 장래에 교훈으로 삼으려는 자세를 찾아보기 힘들다.

하기야 분위기도 모르고 정치비리를 폭로했다가 한순간에 희생당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던 우리 풍토에선 호흡이 긴 진실 추구가 애초부터 어려울는 지 모른다.

그러나 정권이 바뀔 때마다 내세웠던 변화와 개혁은 과거 사실의 확인에서 시작되고 역사적 진실은 관련 인사의 폭로 없이 규명되기 어렵다.

미국처럼 권력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특별검사란 제도적 장치가 부담스럽다면 결국 우리 사회의 진실 확인은 법적 보호도 받지 못하는 개인의 '양심선언' 에 맡길 수밖에 없다는 말인가.

길정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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