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장 선출 패배 한나라당 앞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한나라당에 올 것이 왔다.

3차투표까지 가는 접전을 벌였지만 '오세응 국회의장 만들기' 에 실패했다.

되레 당내의 갈등과 이반 가능성만 확인시킨 결과가 되고 말았다.

줄잡아 15~20여표는 되리란 분석이다.

언제든 당을 떠날 채비를 갖춘 의원수가 그 정도는 된다는 얘기도 된다.

게다가 여권은 정치권에 대한 전면 사정 (司正) 을 앞세워 야당을 압박해올 기세다.

정치개혁에 드라이브를 걸면서 이들을 부추길 경우 과반의석이 허물어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당이 와해되는 것까지는 몰라도 분당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당 간판을 내려야 할 때" "당이 갈데까지 간 것" 이란 회의론 (懷疑論) 이 의원들 사이에 급격히 확산되고 있는 것도 이같은 기류를 반영한다.

TK 출신의 한 의원은 "갈 사람은 빨리 나가 새로 당을 꾸려야 한다" 고 했고, 서울의 한 초선의원도 "당 간판을 내리고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 고 목청을 돋웠다.

또 다른 측면에선 본격적인 당권경쟁 체제로의 돌입을 예고한다.

강력한 지도체제 확립이 절실해진 탓이다.

총재경선으로 무기력과 충격에서 헤어날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커졌다.

총재단과 당3역의 총사퇴 결의도 총재경선이 급류를 타게 되는 또 다른 요인이 된 셈이다.

4일 의총에서 지도부의 사퇴를 받아들여 대행체제로 갈지, 반려할지 등은 누구도 자신 할 수 없는 형편이다.

의장선출 파동은 당권경쟁 판도도 바꿔놓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국회의장직 상실에 따른 당권파의 급격한 위상약화다.

특히 조순 (趙淳) 총재의 경우 특정계파 지지를 유보, 중도적 관리자로 남을 공산이 커졌다.

趙총재의 불출마는 이한동 (李漢東).김덕룡 (金德龍) 부총재 등 당권파의 입지약화로 이어지리란 분석도 있다.

반면 강재섭 (姜在涉) 의원 등을 필두로 한 '세대교체론' 이 급부상할 소지가 커졌다.

의장 자유투표와 관련한 인책론도 불거질 전망이다.

일부의 반대에도 불구, 자유투표를 먼저 주장한 쪽이 한나라당이기 때문이다.

원내 과반의석을 확보하고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네탓 공방' 이 당권경쟁과 맞물릴 경우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휩쓸릴 수도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8.31전당대회까지는 진통이 불가피할 것 같다.

그러나 전당대회로 내분이 봉합될지도 미지수다.

끝내 간판을 내리는 사태가 올지 모른다는 얘기가 끊이지 않을 정도로 상황이 심각한 것이다.

이정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