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화교여성 “폭동때 반인륜 성폭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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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지난 5월 인도네시아 폭동 당시 자행된 화교 여인들에 대한 집단 성폭행 진상이 속속 밝혀지면서 국제사회의 뜨거운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유엔이 진상 조사에 착수했고 서방 국가들도 이 문제를 논의할 움직임이다.

◇ 충격 증언 = 폭도들의 집단 성폭행외에도 화교 여성들이 당한 반인륜적 범죄가 언론을 통해 대서특필되며 속속 공개되자 충격파가 커지고 있다.

지난달 29일 말레이시아로 탈출한 젊은 화교 여성은 "무장 폭도들이 아버지에게 총칼을 들이대면서 나를 성폭행하도록 협박했다" 고 증언했다.

이 여성은 "폭도들은 울며 사정하는 아버지를 때리고 짓밟으면서 나를 겁탈하라고 다그쳤다" 며 통곡했다.

또 다른 여인은 "한밤중 들이닥친 폭도들은 집 뒤뜰 비밀장소에 숨어 있던 우리 식구들을 손쉽게 찾아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따로 끌려가고 오빠 둘과 우리 자매만 남았다. 폭도들은 오빠 둘에게 우리를…" 이라며 말을 맺지 못했다.

증언들을 종합하면 폭도들은 반인륜적 행위를 강제로 시킨 뒤 이를 비디오로 찍어 자기들이 개설한 인터넷 홈페이지에 띄우기도 했다.

특히 한 화교 여인은 "한 여인을 '처리' (성폭행을 의미) 할 때마다 6달러씩 받는다는 말을 폭도들에게 들었다" 고 진술, 화교에 대해 적개심을 품은 집단이 조직적으로 성폭행사태를 유발한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도 제기되고 있다.

지금까지 화교 여인들이 성폭행당한 것으로 확인된 사례는 모두 8백48건. 이중 20명이 성폭행 직후 살해되거나 자살했다.

폭도들은 성폭행을 끝낸 후 여인들을 불타고 있는 집안으로 던져버리기도 했다.

◇ 국제사회 움직임 = 유엔 여성개발기금 (UNDFW) 의 누엘린 헤이저 사무총장은 30일 "인도네시아의 성폭행은 매우 광범위하게, 그리고 계획적.조직적으로 자행됐다. 올해말 열릴 세계인권총회 50주년 회의에 이 문제를 정식 의제로 제기하겠다" 고 말했다.

유엔 인권위원회 대변인도 이날 "인도네시아 성폭행 문제를 조사할 것" 이라고 발표했다.

국제인권조직인 휴먼워치도 30일 세계은행을 중심으로 유럽연합.미국.캐나다.일본.호주 등으로 구성된 인도네시아원조자문단 (CGI)에 "경제문제를 떠나 인도네시아의 인권과 성폭행문제를 논의해달라" 고 요청, 긍정적 반응을 얻어냈다.

◇ 인도네시아 정부 반응 = 정부 차원의 피해조사를 요구하는 국제적 압력이 높아지자 인도네시아 정부는 지난주 정부관리.보안요원.민간대표 등 3자로 구성된 '5월폭동 피해조사 18인 위원회' 를 설립, 화교 피해에 대한 공식 조사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 위원회의 마루주키 다루스만 위원장은 30일 "위원회의 권한은 상당히 제한돼 있다" 고 밝혀 활동에 한계가 있음을 시사했다.

홍콩 = 진세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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