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종수의 시시각각

사교육 때려잡기의 역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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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7월 갓 출범한 신군부 정권은 민심을 수습하고 사회적 위화감을 없앤다며 야심찬 정책을 발표했다. 바로 과외금지 조치다. 과외를 하다 적발되면 학부모와 과외교사를 형사처벌하고 명단까지 공개한다고 했으니 과외를 근절하겠다는 정권의 의지가 대단했다.

그러면 과연 과외가 근절됐는가. 몇 차례 처벌과 명단 공개가 있었지만 과외는 없어지지 않았다. 더욱 음성화되고 고액화됐을 뿐이다.

당시 대학생들 사이에선 이 음성과외가 큰 수입원이었다. 많은 대학생들이 입주 또는 그룹과외로 돈을 벌어 학자금과 생활비를 댔다. 신군부에 격렬히 반대했던 대학생들도 과외금지 조치만큼은 환영했다. 정책에 찬성해서가 아니라 과외금지 조치로 대학생 선생님을 찾는 수요가 늘어난 데다 적발 가능성을 감안한 위험수당까지 붙어 과외 수입이 두둑해졌기 때문이다.

물론 은밀한 과외를 샅샅이 단속하기가 어려웠기에 가능했던 일이지만 과외를 받겠다는 수요와 이를 충족시킬 공급이 맞아떨어졌다는 이유가 더 컸다. 과외시장의 수급원리는 신군부의 서슬퍼런 엄포 속에서도 의연하게 작동했던 것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3년 11월, 당시 유인종 서울시 교육감은 3000명에 이르는 단속인력을 동원해 이른바 ‘학원과의 전쟁’을 벌였다. 강남 부동산 값이 급등한 데는 대치동을 중심으로 사교육 수요가 몰린 것이 큰 몫을 했다고 보고, 사교육 팽창의 원흉인 학원 때려잡기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적발된 불법 고액과외는 단 한 건뿐이었고, 나머지는 자잘한 행정위반 사항들이었다. 그런데도 서울시 교육청은 한 달간의 대대적인 단속을 통해 강남 학원가에 밤 10시 이후의 심야교습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의기양양했다. 과연 그랬는가. 심야교습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다시 재개됐고 학원가의 불빛은 더욱 밝아지기만 했다.

그 ‘학원과의 전쟁’이 다시 등장했다. 학원의 심야교습을 금지해 서민과 중산층 가계를 옥죄는 사교육비를 줄이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중도 서민정책의 일환이다. 정부는 이번 단속이야말로 과거 정부 때와는 차원이 다르다지만 규제로 사교육을 억누르겠다는 발상은 하등 다를 게 없어 보인다. 관계부처 합동으로 집중단속을 벌이는 풍경은 과거 익히 보았던 바이고, 위반사항을 신고하면 포상금을 준다는 신종 기법이 등장한 게 다르다면 다르다. 그러나 단속만으로 사교육이 줄어들 것이란 소박한 기대는 접는 것이 좋겠다.

혹자는 교육이란 신성한 영역에 ‘수요와 공급’같은 천박한 시장원리가 작용한다는 사실을 부인하고 싶을 지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교육, 특히 사교육 시장만큼 시장원리가 적나라하게 작동하는 곳은 드물다.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따르고, 수요가 늘거나 공급이 줄면 가격이 오른다는 극히 원론적인 시장원리 말이다. 따라서 교육시장을 움직이는 시장원리를 부정하는 사교육 대책은 실패할 수 밖에 없다.

학원단속은 명백하게 공급을 줄이는 정책이다. 수요가 여전한데 공급을 인위적으로 줄이면 두가지 현상이 나타난다. 대개는 가격이 오른다. 학원은 줄어든 수입을 메우기 위해 학원비를 올리려 할 것이고, 학부모들은 돈을 더 내고서라도 줄어든 교습 기회를 잡으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학원비를 올리지 못하면 조만간 정원을 무리하게 늘리거나 교습시간대를 바꾸는 편법이 등장할 것이다. 불법 과외와 같은 암시장이 형성될 가능성도 높다. 이런 편법과 불법을 막자면 다시 단속의 범위를 넓히고 강도를 높여야 한다. 그러나 정부의 단속 능력에는 한계가 있지만 자식에게 좋은 교육을 시키겠다는 우리 학부모들의 열의에는 한계가 없다. 그 결과가 어떠할 지는 과거 사교육 규제의 역사가 여실히 보여준다.

사교육비 부담을 줄이는 유일한 대안은 사교육의 대체재인 공교육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뿐이다. 공교육이 사교육보다 값싸고 질좋은 교육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누가 비싼 돈을 내고 밤늦게까지 자녀를 학원에 보내겠는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