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그룹 부당내부거래 제재 배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사상 처음 실시된 공정거래위원회의 5대 그룹 내부거래 조사결과 지금까지 관행처럼 이뤄져온 계열사간 부당지원의 전모가 샅샅이 밝혀졌다.

공정위는 이번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각 그룹의 우량기업들이 부실기업에 자금.자산을 지원해온 연결고리를 차단, 그간 지지부진했던 5대 그룹 구조조정의 기폭제로 삼겠다는 방침이다.

공정위의 위법판정에 따라 앞으로는 그룹내 온정주의적 '돈줄' 이 모두 끊길 수밖에 없게 됐다.

따라서 계열사의 도움으로 간신히 연명해온 한계기업들은 정부가 강제퇴출시키지 않아도 자연히 시장에서 밀려날 전망이다.

실제로 이번 조사에서 부당지원을 받은 것으로 밝혀진 업체들 가운데 25개사는 최근 3년중 1년 이상 적자를 냈고 자본금이 완전 잠식된 기업도 9개사에 달했다. 이같은 공정위의 조치에 대해 5대 그룹은 강력히 반발하고 있지만 공정위의 의지는 단호하다.

"부채비율도 2백%로 줄이고 상호지급보증도 완전 해소해야 하는 마당에 부실계열사를 계속 끌고나가다가는 그룹도 망하고 나라도 망한다" 는 게 전윤철 (田允喆) 위원장의 얘기다.

사실 현 정부는 5대 그룹의 구조조정이 기대에 못미치는 데 대해 상당한 불만을 갖고 있다.

금융권에선 은행.증권 등 부실 금융기관들이 속속 퇴출되고 경영진이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등 구조조정이 숨가쁘게 진행중이다.

또 6대 이하 그룹에선 워크아웃 (기업개선작업)에 따라 살아날 기업과 죽을 기업이 명확하게 판가름나고 있다.

그런데 막상 5대 그룹 쪽에선 뚜렷한 구조조정의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 정부 판단이다. 지난 26일 5대 그룹 총수와 정부 대표들이 만난 1차 정부.재계 간담회 이후 이같은 판단은 더욱 굳어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정부는 부당내부거래 차단과 금융권의 여신한도 축소라는 두가지 '채찍' 을 통해 5대 그룹이 하루빨리 변하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도록 압박을 가하겠다는 생각이다.

금융감독위원회가 은행.투신사 신탁계정에서 동일그룹 기업어음을 5%까지만 보유하도록 한 것도 그 일환이다.

국제통화기금 (IMF) 과의 합의로 2000년부터는 은행.종금사 등의 동일그룹에 대한 여신한도도 대폭 줄어든다.

또 4대 은행을 중심으로 특별대책반이 만들어져 9월말까지 5대 그룹 계열사의 부실여부를 가려내게 된다.

5대 그룹으로선 싫든 좋든 내부거래 중단을 통해 그룹내 부실을 과감히 도려내고 부채비율을 줄여 재무구조를 건실화해야 하는 상황에 던져진 것이다. 정부는 5대 그룹에 대해 바람직한 개혁의 방향으로 이미 빅딜 (대기업간 사업교환) 을 제시해놓은 상태다.

일단 재계의 '자율' 에 맡겨놓기는 했지만 압박강도는 사실상 '주문' 에 가깝다. 재정경제부 고위 관계자는 "이같이 공정거래와 금융을 통해 5대 그룹을 압박하면 결국 두 손을 들고 빅딜을 추진할 수밖에 없을 것" 이라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신예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