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러 갈등 매듭 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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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러 양국의 외무장관이 29일 2차회담에서 외교관 맞추방사건의 '종결' 을 공식선언함으로써 지난 4일 조성우참사관 추방사건을 계기로 한 달여를 끌어 온 양국간 갈등이 일단 매듭지어질 전망이다.

외교관 맞추방사건은 양국이 더 이상 거론치 않고 한.러 우호협력관계의 발전방안만을 논의하자는 한 차원 진전된 국면에 진입한 것이다.

당초 실무협의에서 합의됐던 정상회담 논의가 뒤로 미뤄지기는 했지만 양측은 박정수 (朴定洙) 외교통상부장관의 오는 9월 방러에서 이 문제에 관해 가시적 합의를 이뤄 낼 것으로 전망된다.

국제의회연맹 (IPU) 집행위원인 朴장관은 9월초의 모스크바 IPU회의 참석을 계기로 프리마코프장관과 만날 예정이다.

이날 회담의 하이라이트는 물론 정보담당외교관의 활동범위를 제한한 대목. 정보담당외교관 상호 동수 (同數) , 정보기관의 외무부직원 접촉금지를 규정한 지난 93년의 양국 정보교류협정을 성실히 준수하자는 명분 아래 러시아의 요구를 우리측이 수용한 셈이다.

러시아측은 1차회담을 결렬시키면서까지 자국 (自國) 외교관에 대한 우리 정보요원의 매수.접촉을 중단해 달라고 요구했고, 이것은 1차회담 불발의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외통부 관계자는 추방됐던 아브람킨 참사관이 재입국 할 것이라는 외신보도와 관련, "그가 갑자기 출국조치됐기 때문에 주변 정리를 위해 일시 입국할 수는 있어도 외교관 신분으로 재입국하는 경우는 없을 것" 이라고 단언했다.

러시아외무부의 명예회복과 위상에 초점을 맞춰 왔던 프리마코프장관의 체면을 우리측이 세워 준 것이다.

그러나 우리측 정보요원의 매수 등 과잉정보활동을 우리측이 인정했다는 의미도 담고 있어 향후 이에 관한 '내부정리' 문제도 불거질 것으로 전망된다.

러시아측은 우리측의 수용에 대한 화답으로 주러 한국정보담당외교관 5명의 추가추방으로 빚어진 '정보공백 상황' 에 유의하겠다는 입장을 전달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측 당국자는 이와 관련해 "북한접경지역인 블라디보스토크의 우리측 요원 3명이 한꺼번에 빠져 북한정보 수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입장이 러측에 전달됐다" 며 향후 관계진전에 따라 일부의 복귀도 기대할 수 있다고 전했다.

28일 마닐라호텔에서 30분간 개최된 이날 회담은 시작부터 좋은 조짐을 보였다. 테이블에 마주 선 프리마코프장관은 朴장관의 악수요청에 흔쾌히 응해 달라진 모습으로 일관했다.

회담종료후에는 양측이 모두 박수를 치기도 했다.

이날 오전 아세안외무장관단이 말라카낭궁으로 에스트라다대통령을 방문한 자리에서도 朴장관과 프리마코프장관은 다정하게 대화를 나눠 상황의 급진전을 예감케 했다.

마닐라 = 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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