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절단을 이끈 전권대사 이와쿠라 도모미(그림 가운데 작은 증기선의 일본옷 입은 사람)와 부사 오쿠보 도시미치 등은 메이지 유신의 주역이자 귀국 후 정권의 헤게모니를 장악한 실세들이었다. 이들은 정부 각 부서의 중견 관리 41명과 유학생 43명 등 100여 명을 이끌고 장도에 올라 1872년 9월까지 1년10개월 동안 미국·영국·프랑스·네덜란드·독일·러시아·이탈리아·스위스 등 구미 선진국의 문물과 제도를 둘러보았다. 사절단이 거둔 성과는 사절단을 따라갔던 역사가 구메 구니타케에 의해 총 5권의 『미구회람실기(米歐回覽實記)』라는 책으로 활자화, 출판돼 국민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지식과 정보가 되었다. 그가 “사절의 모든 성과를 국민의 일반적 이익과 개발을 위해 편집·간행”한다고 책머리에 썼듯이, 천황이 아니라 바로 국민을 대표한다고 생각한 이와쿠라 사절단은 자신들의 경험을 국민과 함께 나누었다.
10년 뒤 일본을 따라 배우려 했던 조선의 조사시찰단(1881년 5~8월)은 그들이 거둔 성과를 담은 80여 권의 보고서를 고종에게 올렸다. 그러나 붓글씨에 능한 아전들이 두 달에 걸쳐 한 글자 한 글자 정성 들여 손으로 쓴 비단 표지를 입힌 이 책들은 국왕과 일부 위정자들의 정책결정용 참고자료에 지나지 않았다. 한 세기 전 동아시아에서 일어난 근대를 향한 ‘시간의 경쟁’에서 우리가 뒤처진 이유가 어디에 있었는지 자명하다.
허동현(경희대 학부대학장·한국근현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