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시카메라 등장으로 본 '시각'의 세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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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본다' 는 것의 통념이 흔들리고 있다. 수영복을 투시 (透視) 해 알몸까지 보여주는 카메라가 등장하는가 하면, 기 (氣) 훈련을 통해 이마나 손으로도 사물을 볼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까지 있다.

초음파 (超音波) 를 두고도 '본다' 는 이와 '듣는다' 는 이가 갈린다. 알쏭달쏭한 보는 것의 과학을 풀어본다.

통념상 '본다' 는 것은 눈으로 사물을 인식하는 행위. 그래서 사람들은 눈에 안보이면 못보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갖기 쉽다.

최근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수영복 투시카메라가 좋은 예. 이 투시카메라를 이용할 경우 나일론 소재의 수영복을 최고 8벌까지 껴입어도 맨 몸을 어느 정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상당수 사람들은 "아무리 그럴 수가 있겠나, 쇼나 트릭일 것" 이라며 의문을 표시한다. 하지만 이는 통념만 떨쳐버리면 과학적으로 얼마든지 가능한 일. 투시 카메라는 보통 카메라와는 딱 한가지만 다르다.

렌즈 앞에 달린 적외선 필터가 그 것. 적외선은 수영복 정도의 옷은 간단하게 투과하는 반면, 피부는 못뚫기 때문에 반사돼 나온다.

적외선 필터는 이렇게 반사돼 나온 적외선만을 집중적으로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한국과학기술원 물리학과 남창희교수는 "사람의 시신경은 가시광선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사물을 인식한다" 며 "가시광선은 세상의 사물을 볼 수 있는 매개체 중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고 말했다.

이 매개체에는 가시광선 외에 적외선.X선.전파 등 매우 다양한 전자기파와 초음파까지도 포함될 수 있다. 박쥐는 퇴화한 눈 대신 '귀' 로 초음파를 듣지만 이는 실제 보는 행위와 크게 다를 바 없다. 박쥐는 먹이나 장애물을 마치 태아의 초음파 사진처럼 인식하기 때문이다.

또 꿀벌은 자외선을 느끼기 때문에 해가 구름에 덮였을 때도 해의 위치를 쉽게 알아낸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 광학그룹 정영붕박사는 "기실 물리학적으로 따지고 들면 보는 것과 만지는 것의 경계는 애매하기 짝이 없다" 고 말했다.

한 예로 사람이 눈을 감고 손으로 사물을 만지작거려도 시각만큼 정교하지는 않지만 형태를 알 수 있다. 오히려 초정밀의 물리세계에서는 만지작거림으로써 눈으로 볼 수 없는 초극미의 세계까지 인식할 수 있다.

주사터널링현미경이나 주사전자현미경은 그 예. 이들 현미경은 전자가 물체를 훑고지나가면서 그때 그때 보내온 신호를 영상으로 재현한 것.수십억분의 1m도 안되는 분자.원자가 오히려 보기보다는 만져서 나타난 것. 옷속이 아니라 살속까지 들여다보는 X레이도 다를 바 없다.

X레이는 옷은 물론 피부.근육까지도 가볍게 투과하는 반면, 뼈는 제대로 뚫지 못한다. X레이가 개발된지 백년도 넘었으니 수영복 정도를 뚫어보는 카메라가 등장한 것은 기술적으로 한 참 뒤늦은 셈이라고나 할까.

김창엽.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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