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 비리직원 자체처벌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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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국세청이 이례적으로 자체 기획사정을 통해 2백70명의 비리공무원을 공개적으로 징계한 것은 앞으로 세무관리를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제살을 도려내듯 집안의 부패된 부분부터 제거한 뒤 사회에 만연된 음성.탈루 소득자에게 본격적으로 칼을 빼들겠다는 것이다.

사정의 성역처럼 치부돼온 세무공무원을 정화하지 않고는 세무비리의 고리 차단은 공염불에 그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일단 이번 자체 사정은 의도에서부터 과거와 판이하다.

지난 80년에는 신군부가 일괄적으로 사표를 받은 뒤 객관성 없이 선별적으로 공직에서 추방했고, 지난 93년 문민정부는 '공직자 재산등록' 과 관련해 징계조치했었다.

이번에는 금품수수와 향응을 받은 사실을 비롯해 업소를 무단 방문해 세무조사 협박을 하는 등 부당한 업무처리를 객관적인 증거로 처벌을 내렸다.

금품수수의 기준도 업무와 관련해 의례적으로 10만원 정도 받은 것까지 징계 범주에 포함했다. 이에 따라 징계를 받은 2백70명도 전체 세무직원 1만4천9백15명의 1.8%에 이르고 공직추방자는 전체 직원 중 0.7%로 국세청 개청 이래 최대 규모다.

물론 이번 자체 사정은 '경제 안기부' 라는 별명을 갖고 있을 정도로 권위가 막강한 국세청의 특수성 때문에 검찰의 수사를 배제시켰다.

재정경제부의 외청에 불과하지만 대통령이 직접 챙기는 국세청의 위상이 고려된 것이다.

자체 사정이다 보니 반발과 내부진통도 상당했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난 3월 국세청은 이건춘 (李建春) 청장이 취임하면서 곧바로 국세청 개혁작업에 착수했다.

인사가 정체돼 조직의 활력이 둔화돼 있는 고위간부직과 무사안일.세무비리가 만연돼 있는 중하위직의 공직 풍토를 바꾸지 않으면 세무행정의 개혁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이번 조치까지 국장급 이상 간부 전원이 교체됐고 간부급은 행정고시 10회 이하로 대폭 물갈이됐다.

일반 세무직에 대해서도 지난 4월까지 62명을 처벌하고 이번에 2백8명을 처벌해 2단계에 걸쳐 문제 공무원을 모두 징계했다.

국세청의 이같은 사정의지가 얼마나 지속될지 관심거리다.

김동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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