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 이은정 ‘그린 반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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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정(21)이 무명의 꼬리표를 떼어내며 생애 첫 우승의 기쁨을 누렸다.

이은정이 우승 트로피를 안고 기뻐하고 있다. [실베이니아 AFP=연합뉴스]


이은정은 6일(한국시간) 미국 오하이오주 실베이니아의 하일랜드 메도스 골프장(파71·6428야드)에서 끝난 LPGA투어 제이미 파 오웬스 코닝클래식 마지막 날 연장 접전 끝에 정상에 올랐다. 4타 차 단독 선두로 출발한 이은정은 타수를 줄이지 못하며 합계 18언더파로 이날 4타를 줄인 모건 프레셀(미국)과 공동 선두로 경기를 마쳤다. 이은정은 18번 홀(파5)에서 열린 연장 첫 번째 경기에서 4m 버디 퍼팅을 성공시키며 파에 그친 프레셀을 제치고 우승했다. 이은정은 올 시즌 다섯 번째 우승한 한국인으로 이름을 올렸다.

21만 달러(약 3억4000만원)의 우승 상금을 받은 이은정은 이달에 열리는 메이저대회인 US여자오픈과 브리티시여자오픈 출전권도 보너스로 얻었다. 또 조건부 LPGA 출전의 족쇄에서도 벗어났다.

이은정은 1988년생 용띠로 ‘박세리 키즈’다. 경기도 포천의 동남중 1학년 때 살을 빼기 위해 골프를 시작했지만 국내 아마추어 무대에서는 우승 한번 하지 못한 무명 선수였다. 해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테미큘러에서 전지훈련을 했던 그는 2005년 US여자아마추어 퍼블릭링크스챔피언십에서 깜짝 우승하며 활동무대를 미국으로 옮겼다.

2006년 프로에 데뷔한 이은정은 2부 투어인 퓨처스 투어를 거쳐 2007년 퀄리파잉 스쿨에서 공동 25위로 조건부 시드를 받았다. 그해 온 가족이 테미큘러로 옮겨와 식당을 경영하며 이은정을 뒷바라지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상금 랭킹 104위(9만5000달러)로 또다시 퀄리파잉 스쿨을 거쳐야 했다. 결과는 공동 44위. 올 시즌 역시 조건부 시드로 LPGA투어에 나서고 있다. 이은정은 “리더보드를 전혀 보지 않고 내 경기에만 집중하려고 노력했다”며 “우승해 너무 기쁘다. 더 이상 아프지 않는 것이 목표”라며 눈물을 흘렸다. 이은정은 지난 시즌 막바지에 찾아온 허리와 목 디스크로 힘겨운 나날을 보내야 했다.

한편 미셸 위(20)는 합계 16언더파로 이선화(23), 김송희(21) 등과 함께 공동 3위에 올랐다. 2주 연속 우승에 나선 신지애(21)는 공동 17위(12언더파)에 그쳤다.

다음은 이은정과 일문일답.

-생애 첫 우승을 차지했는데.

“프레셀과 연장전에 가게 돼서 정말 떨렸다. 연장전에서 버디 퍼팅을 할 때는 볼을 라인에 맞춰놓고 그대로 과감하게 때렸다. 아직 얼떨떨하고 우승이 실감나지 않는다.”

-입상 경력은.

“국내 아마추어 대회에서도 우승한 적이 없다. 큰 대회 우승은 2005년 US여자아마추어 퍼블릭링크스 챔피언십이 처음이었을 정도로 이름을 알릴 기회가 없었다. 1988년생이지만 학교에 일찍 들어가 박희영과 한영외고 동기생이다.”

-한국 프로무대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미국으로 진출했는데.

“2002년 겨울 전지훈련을 하기 위해 미국 캘리포니아로 왔는데 미국 골프환경이 너무 좋았다. 이왕 LPGA 투어를 목표로 했으니 미국에서 승부를 내려고 했다. 이후 방학 때마다 미국에서 전지훈련을 했고, 2006년 미국에서 프로로 전향했다.”

-지금 가장 생각나는 사람은.

“아버지(이경수씨)가 캘리포니아주 테미큘러에서 한식당을 운영하며 나를 뒷바라지하신다. 지금 무척 기분이 좋으셔서 손님들에게 공짜로 식사를 대접하고 계신다.”

문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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