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일]SBS 여학생폭력 방치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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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18일 SBS 밤 8시뉴스. 첫 머리에 "학교 폭력 현장이 카메라에 잡혔다" 는 앵커의 말이 있었다.

이어진 것은 한 여학생이 다른 여학생을 우산으로 때리고 발길질까지 해대는 장면. 아니나 다를까 논란이 이어졌다.

"폭력을 말리지 않고 촬영이나 하고 있었다" 는 비난론과 "학교 폭력의 심각성을 깨닫게 해줬다" 는 긍정론이 함께 나오고 있는 것. 사실 이는 별로 새로운 게 아니다.

사건 현장을 누비는 기자는 누구나 "취재가 먼저인가 위기에 빠진 사람을 구하는 것이 먼저인가" 고심하게 된다.

순간을 잡아내야하는 사진기자는 갈등이 더 심하다.

분신자살처럼 1~2초 사이에 생명이 오가는 상황에서는 특히 그렇다.

91년5월18일. 연세대 교문앞에서 시위도중 숨진 강경대군 장례식 당시 39세의 李모 (여) 씨가 갑자기 분신했다.

당시 현장에 있던 사진기자의 말. "처음은 너무 놀라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러나 바로 다음 순간 사진을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벌써 사람들이 달려들어 불을 껐다. 그 사람들로 인해 안도감을 갖고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나중에는 먼저 사람을 구했어야하는게 아닌가 하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

심재철 고려대 교수는 이런 해석을 내린다.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 기자 말고도 불을 끌 사람이 많았고, 실제로도 바로 불을 끄지 않았는가. 생생한 보도를 통해 사회의 문제점을 국민에게 알리는 것이 우선이었던 상황으로 본다. "

80년대 중반 미국에서는 한 TV가 분신자살 장면을 방영해 '생명을 시청률을 높이는 도구로 사용했다' 는 반발에 부닥치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시위 도중 학교 옥상에서 밧줄을 타고 탈출하려던 학생이 중간에 힘이 빠져 그저 매달려 있기만 하자 사진기자들이 합심해 카메라를 놓고 밧줄을 끌어올려 살려낸 일도 있다.

보도 교과서를 만든다면 어떤 경우에 사람을 먼저 구하고 어떤 경우에 취재를 앞세우라고 써야할까. 이에 대한 김영호 전주우석대교수의 답은 일반기자들과 똑 같았다.

"모르겠다. "

권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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