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 시평

인터넷이 만든 제3세대 시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시위란 본디 상대를 직접 겨냥하는 게 상례다. 회사에 불만이 있으면 사장실 앞에 모여 항의하고, 정부에 불만이 있으면 청사에 몰려가 시위를 벌인다. 시위란 또한 표현방식이 거칠게 마련이다. 시위라고 하면 사람들은 붉은 띠를 머리에 두른 채 주먹을 흔들며 구호를 외치고 때로는 돌멩이나 화염병을 던지는 성난 군중을 연상한다.

그런데 미국은 1960년대에 시위의 이런 성향을 뒤엎은 새로운 방식을 선보였다. 당시 신좌파들은 정부나 우파를 겨냥한 것이 아니라 미디어의 눈을 향한 시위를 조직적으로 연출했다. 그들은 자기들의 주장이 정당한 것임을 알리기 위해 거리에서 다양한 볼거리를 펼치며 평화적으로 시위를 벌였다. 시위 행태가 새롭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텔레비전 카메라를 끌어모을 수 있을 것이라는 그들의 발상은 적중했다. 이 신종 데모를 사람들은 '미디어 이벤트'라고 이름 붙였다.

마치 학예회 하듯이 미디어 이벤트로 치르는 시위는 '풍진 세상'을 살아온 우리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우리는 그동안 숱하게 시위를 벌였지만 그것은 시가행진의 차원을 넘은 마치 시가전을 방불케 하는 것이었다.

3.1운동 때는 1500여회에 걸쳐 연인원 200여만명이 전국을 휩쓸었다. 당국의 발표에 따르면 이 시위로 7500명이 넘게 숨졌고, 그 두배를 넘는 사람이 다쳤다. 경찰에 검거된 사람이 5만명을 넘었고 47개의 교회와 2개의 학교, 700여채의 민가가 불에 탔다. 4.19 때도 시위가 살벌하기는 마찬가지였다. 1960년 2월 대구에서 시작된 학생데모는 마산으로 번져 마침내 최루탄이 머리 깊숙이 박힌 희생자를 냈고, 4월 19일에는 경무대 앞에 모인 10만 군중을 향해 경찰이 무차별적인 실탄 사격을 퍼부어 이날을 '피의 화요일'로 만들었다.

시가전이나 다름없는 이런 시위는 80년에 이르러 광주에서 진짜 시가전의 형태로 전개되었다. 나라의 주인인 국민과 나라를 지키는 군인이 전선도 밤낮도 없이 싸운 이 참담한 시가전에서 공식 집계로 191명의 사망자와 122명의 중상자가 났다. 우리의 시위 역사가 이렇듯 피로 얼룩져 있으니 미국의 이른바 미디어 이벤트가 우리로서는 부럽지 않을 수 없었다.

시위를 미디어 이벤트 형식으로 치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우리의 소망은 월드컵으로 내공을 쌓은 시민세력에 의해 드디어 2002년에 촛불시위의 형태로 실현됐다. 미선.효순이가 미군 무한궤도차량에 치여 숨진 사건이 발단이 된 이 집회는 해를 넘겨가며 열렸지만 화염병도 최루탄도 없이 끝났다. 그것은 우리에게 익숙한 시가전 같은 시위가 아니었다. 우리는 세계의 시위 역사상 최고 수준의 아름답고 절제된 형태를 보여주었다.

이 촛불시위에 대해 우리가 기억해야 할 점은 그것이 미디어 이벤트라는 제2세대 시위의 결정판이었을 뿐만 아니라 제3세대 시위의 효시였다는 점이다. 미국에서 대두한 미디어 이벤트는 퍼포먼스의 형식이 새로울 뿐 권위있는 구심체가 다양한 조직을 통해 대대적으로 군중을 동원하는 본질은 전통적인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촛불시위는 뚜렷한 구심점도 없이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매체를 통해 자발적으로 어마어마한 규모의 공중이 모인 제3세대 시위의 전형이었다.

인터넷이 매개하는 제3세대 시위는 우리 사회에서 일상화해 지금 이 순간에도 여러 곳에서 다채롭게 전개되고 있다. 신문의 인터넷판 기사에 단 댓글의 형태로, 각종 게시판에 실은 의견의 형태로, 또는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린 패러디와 같은 형태로 사람들을 웃기거나 화나게 한다. 그 내용이 정파적이고 표현방식이 저질스러운 경우가 많지만 시가전 같은 시위의 시대를 벗어나 새로운 시위의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마음은 한결 가벼워진다. 세상이나 잔디는 좀 떨어져서 봐야 아름답다.

김민환 고려대 교수.언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