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공기업]4.낭비많은 중복조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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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대구지하철공사 기획예산과에는 예산계와 재정계가 있다.

이름만으로는 이들 두 부서가 무슨 일을 나눠하는지 알아채기 어렵다.

비슷한 부서라는 느낌도 준다.

그렇지만 어쨌든 하는 일은 나눠져 있다.

예산계는 한해의 예산을 편성.집행하고 재정계는 공채발행과 지하철운영에 필요한 재원조달, 부채상환등 일을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 업무는 상호연관성이 큰 것으로 분리해서 하기는 곤란한 점이 없지않다.

그래서인지 지하철공사는 이들 두 부서의 업무를 통합해 운영하고 있다.

즉 예산계장이 재정계 직원도 지휘하고 거꾸로 재정계장은 예산계 직원도 지휘한다. 결국 계장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두 사람이 하고 있는 셈이다.

지방공기업의 또다른 문제점은 조직중복에 따른 업무의 비효율성이다.

한 사람이 해도 될 일을 두 세 사람이 하고 있으니 임금부담도 크고 업무의 효율성이 떨어진다. 동일 사안에 대해 서로 의견이 맞부딪치기도 한다.

대구지하철공사의 경영관리과 경영관리계와 기획예산과 기획계도 이런 케이스다.

경영관리계는 한해의 업무와 실적을 파악하는 일을 한다.

기획계는 공사의 중.장기 업무계획을 한다.

역시 나눌 필요가 없는 일을 분리해 하고 있는 셈이다.

이들 두 계장뿐만 아니라 이들 부서의 상위부서장인 경영관리과장.기획예산과장도 자연 중복된 일을 할 수밖에 없다.

대구도시개발공사 기획조정실에는 투자분석과.경영관리과.기획예산과.감사과가 있다. 이중 감사과는 뭐하는 곳인지 확실히 감이 잡힌다.

그러나 나머지 3개과는 도대체 무슨 일을 나눠하는지 알기 어렵다.

도개공관계자는 "전혀 다른 업무를 한다" 고 강변했다.

위인설관 (爲人設官) 은 부산도 예외는 아니다.

부산도시개발공사는 부산시가 추진하려던 인공섬 조성업무를 맡기위해 91년 해양1.2.3부를 두었다. 그러나 인공섬 조성은 사업성이 없는 것으로 판단돼 용역비등 1백50억원만 날리고 백지화됐다.

이렇게 되자 도개공은 이를 개발1.2부로 개편했다.

개발1부는 부산시의 해양매립과 친수 (親水) 공간 조성사업을, 개발2부는 부산시의 재개발.재건축 업무를 맡았다. 그러나 개발1부의 업무는 부산시의 항만개발계, 개발2부는 시의 재개발계와 업무가 사실상 중복된다.

경남지역 농.수.축산물등 수출지원을 위해 설립된 '경남무역' 은 총무.무역부등 2개 부 아래 5개 팀이 있다.

무역부의 농수산물 수출지원업무는 경남도 농산물수출계.수출농단계와 업무가 중복된다. 이 부의 해외시장 개척단 파견과 해외바이어 유치활동도 도의 해외시장계와 업무가 비슷한다.

결재라인이 다단계여서 도장만 찍는 사람이 많은 것도 지방공기업이 민간기업과 다른 점이다.

수년만에 포항제철로 복귀한 유상부 (劉常夫) 회장은 '월간중앙 윈' 7월호의 인터뷰에서 "과거 13단계였던 결재라인이 5년만에 직원 - 팀장 - 본부장의 3단계로 확 줄어 있는데 너무 놀랐다" 고 말했다.

매출.조직규모면에서 포철과 비교도 안되는 지방공기업은 포철보다 계선 (係線) 이 복잡하다.

대구도시개발공사의 결재라인은 실무자 - 과장 - 부장 - 이사 - 사장으로 5단계로 돼 있다. 조직상으로는 이렇게 되나 실무자 위에 이들을 지휘하는 '대리' 라는 직급이 있어 사실상 6단계인 셈이다.

조직 내부에서조차 "현업에서 일하는 사람보다 앉아서 도장찍는 사람이 더 많다" 는 불평이 새나오고 있다.

계선이 다단계일 경우 결재라인중 한 사람만 뒤틀어도 업무가 진척되지 않기 마련이다. 상의하달 (上意下達) 도 정확할 리 없다.

더욱 기막히는 것은 기업에서는 볼 수 없는 직급과 급여체계다.

지난해 7월 설립된 경북개발공사의 경우를 보자. 직급과 급여체계를 공무원과 연계했다.

이사는 도 국장급, 과장은 도 계장급으로 맞췄다.

여기다 직원은 '징계를 받지 않고는 본인의 의사에 반해 면직되지 않는다' 는 공무원과 같은 정년및 신분보장 규정도 두었다.

업무를 어물쩡 넘겨도, 기업이 이익을 내든 말든 정년까지는 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적을 내지 못하면 당장 옷을 벗어야 하는 민간기업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해마다 지방공기업 경영진단을 하고 있는 지방자치경영협회 정웅하 (丁雄夏.49) 수석위원은 "지방공기업들은 조직중복에 따른 지적을 자주 받고 있지만 지자체 산하기관이어서인지 개선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며 "지자체가 수지타산을 생각지 않고 앞다퉈 지방공기업 설립에 나서는 것도 문제" 라고 말했다.

부산.대구.울산.창원 = 송의호.강진권.김상진.황선윤.홍권삼.정용백.송봉근.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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