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센터 KOEX 수출지원 손들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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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서울삼성동의 한국종합전시장 (KOEX) 내 상설전시관 2층. 전시장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는 멈춰선 지 오래된 듯 먼지가 뽀얗게 끼어 있고, 전시장 복도를 걷다보면 퀴퀴한 냄새와 희미한 불빛이 마치 도심지의 슬럼가를 방불케 한다.

파키스탄인 바이어 두명이 전시장을 둘러보다 고개를 갸우뚱한다.

이름은 '상설전시장' 인데, 정작 점포들이 대부분 문을 닫은 채 썰렁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일부 문을 연 점포는 종업원 서너명이 잡담하거나 간간이 걸려오는 전화를 받고 있을 뿐이고 빈 가게 옆에는 전시관 철거에 반발하는 항의문들이 붙어 있다.

오리.거위털 의류전문업체 ㈜고운의 김성범 (37) 사장은 "국제적으로 신뢰받던 이곳이 이제는 거의 폐허화 돼 바이어들의 발길이 뜸해지고 중소 수출업체들의 피해가 막심하다" 고 말했다.

한때는 수출 전초기지 역할을 하던 무역센터의 상설전시관이 개설 10여년만에 존폐 위기를 맞고 있다.

한국무역협회가 재정적자 등을 이유로 상설.종합전시관을 없애고 이곳을 대형회의장 등 컨벤션센터와 극장.실내골프연습장.어린이놀이터 등으로 만들기로 했기 때문. 무역협회 김정태 이사는 "수출입자들에게 회비조로 걷던 무역특계자금이 없어진 후 매년 3백억원 가량의 예산이 모자라 돈을 벌어야 하는데다 2000년 아시아.유럽정상회의 (ASEM) 준비를 위해서도 이 건물의 개조가 불가피하다" 면서 "3백60억원을 들여 완전 재단장할 계획" 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업계 관계자 및 전문가들은 "수출지원을 위해 대규모 종합전시관이 더 많이 필요한데도 불구하고 그나마 있는 곳마저 없애는 것은 수출지원 업무를 포기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고 지적했다.

상설전시관은 무협이 지난 88년 중소업체들의 수출활성화를 위해 대만의 본을 떠 만든 곳. 약 5만여평의 대지에 무역센터를 만들면서 이곳에 4층 규모 건물에 총 7백33개의 점포를 조성, 해외 바이어들이 우수 중소제품을 직접 보고 상담.계약 등을 원스톱으로 처리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케 했다.

◇ 현황 = 한때 거의 차다시피 했던 상설전시장내 7백33개 점포들이 지금은 겨우 2백39개 점포만 입주해 있는 상태. 그나마도 무협은 입주자들에게 빨리 비워줄 것을 종용하고 있다.

◇ 무협 입장 = 상설전시관을 통한 수출 확대 효과가 당초 기대에 비해 미진한데다 정부 지원도 충분치 못해 폐쇄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김정태 이사는 "이곳을 통한 중소업체들의 연간 수출규모는 8억달러 정도로 우리나라 전체의 0.5% 수준에 불과하다" 고 말했다.

때문에 무협은 상설전시장뿐 아니라 옆에 있는 종합전시장을 없애고 이곳을 대형회의장인 컨벤션센터로 개조하고 상설전시장을 보조사무실로 꾸며 수입을 올리겠다는 계획이다.

또 이 건물의 지하와 인근 약 5만평에 초대형 영화극장 17개와 호텔을 짓고 식당.디스코테크.수족관.골프연습장.미로찾기시설.어린이 놀이시설 등 유흥장으로 꾸밀 방침이다.

◇ 입주업체 반응 = 삼미무역 반성준 (潘性俊) 사장은 "무협이 수익만을 위해 중소기업의 수출 지원을 포기하는 행위" 라고 지적했다.

한 업계 전문가는 "무협이 구조조정 등을 통해 효율적인 조직으로 재탄생 해 수출 지원에 역점을 둬야 할 시기인데도 상설전시장을 유원지같은 모습으로 변질시키면서까지 수익사업에 전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고 지적했다.

김시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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