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통령 파업엄단 천명 배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이 14일 노동계를 정면으로 겨냥했다.

국무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다.

金대통령은 그간 노동계에 대해서는 가능한 한 (싫은) 말을 아껴왔다.

노동자들의 시위.집회 등이 계속 있었지만 金대통령은 아랫사람들을 시켜 자제와 협조를 당부했을 뿐 직접 나서기를 자제했었다.

그런 金대통령이 확 달라졌다.

이날 시작된 민주노총 파업이 원인을 제공했다는 게 청와대측 설명이다.

金대통령은 민주노총의 정리해고 철회 주장부터 반박했다.

"노동자들이 정리해고에 대해 항의하고 있지만 그것은 제1기 노사정위에서 완전합의돼 입법화된 사항이다. 이것은 국민적 합의로, 이러한 개혁을 놓치면 경제는 못살린다. "

金대통령은 외국의 사례까지 덧붙여 정리해고 철회 요구의 부당성을 지적했다.

"미국과 영국은 정리해고를 자유롭게 하는 나라로 어떤 나라보다 취업률이 높다. 그러나 정리해고가 어려운 프랑스와 독일은 실업률이 10% 이상이다.

기업은 자유로운 정리해고를 통해 활력을 찾고 발전하며, 그로 인해 고용이 창출되고 주변산업도 발전해 일자리가 더 늘어난다. "

金대통령은 노동자만 유독 희생당하고 있다는 노동계 주장도 일축했다.

"노동자는 고통을 전담하고 있다고 하지만 수많은 기업이 구조조정을 하고 있고, 5개은행과 종금사 등은 퇴출당하고 있다.

(퇴출은행.종금사) 주주들은 투자금액을 완전히 잃었으며, 국민들도 세금으로 수십조원을 부담하고 있으므로 노동자만 희생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金대통령은 노동계의 불만이 정부로 쏠리고 있는 것과 관련, "노동자를 위해 정치참여를 보장했고, 실업대책기금으로 합의된 5조원을 8조4천6백억원으로 늘렸으며, 해고를 유예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보조금을 지원하는 등 정부는 할 일을 다하고 있다" 고 강조했다.

金대통령은 그간 노동계에 대해 참았을 법한 말을 다한 셈이다.

따라서 향후 노동정책의 변화가 예상된다. 金대통령이 이날도 약속한대로 정부는 평화적이고 합법적인 집회.쟁의는 보장할 것이다.

하지만 불법.폭력행위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보다 훨씬 강도높게 대처할 것 같다.

정리해고와 근로자파견제 등 노동의 유연성이 정착되지 못하고 노동불안 상태가 계속될 때 외국인투자가 유치될리 만무하고, 수출에도 차질이 빚어진다는 대통령의 판단은 확고하다.

밖에서 우리 노동상황이 어떻게 변하는지 투자를 일단 미루고 주시하고 있다는 사실도 金대통령은 꿰뚫고 있다.

때문에 국무회의 석상에서 정리해고 불가피성을 강조했다고 한다.

金대통령은 그러나 강경일변도로 가지는 않을 것이다.

불법에는 엄중 대처하되 설득노력도 강화한다는 입장이라고 청와대는 누누이 설명했다.

金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노동계와 대화해 노동자들의 입장과 권익을 살려주는 일을 병행할 것" 이라고 말했다.

노동계를 설득하기 위해 金대통령은 정부개혁을 더욱 촉진할 방침이다.

金대통령은 "정부 지도층은 물론 모든 공무원이 앞장서야 국민들이 따라온다" 며 최근 행정자치부 조직중 2국 5개과를 추가로 축소한 김정길 (金正吉) 행정자치부장관을 '모범적' 이라고 칭찬했다.

이는 정부조직 축소, 공기업 민영화 등 정부개혁에 더욱 박차를 가하겠다는 뜻이다.

이런 것 등을 바탕으로 노동계를 다독거리고, 노동계 압박을 위한 국민여론도 조성해 나가겠다는 게 金대통령의 복안이다.

이상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