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 구본진 정책조정국장은 2일 민관합동회의 관련 브리핑에서 “경영권 보호장치를 마련해 달라는 기업들의 요청에 따라 법무부와 협의를 거쳐 올해 안에 도입 방안을 마련하겠다”며 “포이즌 필 위주로 논의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다른 보호장치를 도입하는 것도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포이즌 필이란 기존 주주들이 이사회 의결만으로도 시가보다 싸게 신주를 살 수 있도록 한 장치다. 적대적 인수합병 위협을 받는 기업이 이처럼 신주를 저가에 대량으로 발행하게 되면 경영권을 노리는 쪽은 자금 부담이 커지게 된다.
미국·일본·프랑스 등에선 이미 시행 중이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기업들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사내에 쌓아 뒀던 자금을 설비 투자 등에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정부는 기대하고 있다.
적대적 인수합병 방어장치 도입은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으로 지난해 초 인수위 시절부터 논의됐던 안건이다. 상법의 주무 부처인 법무부에서 적극적으로 도입을 추진했지만 재정부 등 경제부처들이 외국인 투자 유치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이유로 난색을 표해 진전이 없었다. 인수합병 시장이 위축되고 경영진의 사적 이익에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하지만 기업들이 적대적 인수합병 위협에서 벗어나 투자를 늘리는 게 시급해지자 경제부처들도 포이즌 필에 찬성으로 돌아섰다. 윤증현 재정부 장관은 “인수합병 시장에서 공격과 수비의 균형이 맞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포스코·KT&G 등 국내 대표 기업들이 외국 투기 자본의 인수합병 위협에 노출돼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건국대 법대 권정호 교수는 “국내 기업은 자사주를 사들이는 것 말고는 별다른 경영권 방어장치가 없어 외국 투기 자본의 위협에 시달려 왔다”며 “앞으로 인수합병 방어 비용으로 쓰일 돈이 설비 투자와 연구개발(R&D)로 흘러들어 갈 것”이라고 말했다.
재정부는 주식의 종류별로 의결권 수에 차등을 두는 복수의결권·황금주의 도입도 검토했으나 ‘주주 평등 원칙에 맞지 않는다’는 논란이 있어 포이즌 필을 우선적으로 도입하기로 했다.
손해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