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대적 M&A서 경영권 방어 ‘포이즌 필’ 이르면 내년 도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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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적대적 인수합병(M&A)으로부터 기업의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한 ‘포이즌 필(Poison Pill)’ 제도가 이르면 내년에 도입된다.

기획재정부 구본진 정책조정국장은 2일 민관합동회의 관련 브리핑에서 “경영권 보호장치를 마련해 달라는 기업들의 요청에 따라 법무부와 협의를 거쳐 올해 안에 도입 방안을 마련하겠다”며 “포이즌 필 위주로 논의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다른 보호장치를 도입하는 것도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포이즌 필이란 기존 주주들이 이사회 의결만으로도 시가보다 싸게 신주를 살 수 있도록 한 장치다. 적대적 인수합병 위협을 받는 기업이 이처럼 신주를 저가에 대량으로 발행하게 되면 경영권을 노리는 쪽은 자금 부담이 커지게 된다.

미국·일본·프랑스 등에선 이미 시행 중이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기업들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사내에 쌓아 뒀던 자금을 설비 투자 등에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정부는 기대하고 있다.

적대적 인수합병 방어장치 도입은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으로 지난해 초 인수위 시절부터 논의됐던 안건이다. 상법의 주무 부처인 법무부에서 적극적으로 도입을 추진했지만 재정부 등 경제부처들이 외국인 투자 유치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이유로 난색을 표해 진전이 없었다. 인수합병 시장이 위축되고 경영진의 사적 이익에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하지만 기업들이 적대적 인수합병 위협에서 벗어나 투자를 늘리는 게 시급해지자 경제부처들도 포이즌 필에 찬성으로 돌아섰다. 윤증현 재정부 장관은 “인수합병 시장에서 공격과 수비의 균형이 맞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포스코·KT&G 등 국내 대표 기업들이 외국 투기 자본의 인수합병 위협에 노출돼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건국대 법대 권정호 교수는 “국내 기업은 자사주를 사들이는 것 말고는 별다른 경영권 방어장치가 없어 외국 투기 자본의 위협에 시달려 왔다”며 “앞으로 인수합병 방어 비용으로 쓰일 돈이 설비 투자와 연구개발(R&D)로 흘러들어 갈 것”이라고 말했다.

재정부는 주식의 종류별로 의결권 수에 차등을 두는 복수의결권·황금주의 도입도 검토했으나 ‘주주 평등 원칙에 맞지 않는다’는 논란이 있어 포이즌 필을 우선적으로 도입하기로 했다.

손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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