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두려운 여자가 세상과 소통하는 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7면

“앞으로 이상한 슬픔, 이상한 따뜻함, 이상한 고독을 많이많이 만들어 퍼뜨려 주시길.”

올해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으로 선정된 장편소설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의 작가 장은진(33·사진)씨에게 한 심사위원이 심사평을 통해 전한 당부다. 심사평의 요지는 ‘세상을 지각하고 감각하는 독특한 안테나가 돋보여 장씨 작품을 선정했다’는 것이다. 소설은 정신적 상처(트라우마)를 입은 한 남자가 사고로 시력을 잃은 애완견을 데리고 모텔을 전전하며 여행 다니던 중 만났던 사람들에게 밑도 끝도 없이 편지한다는 내용이다. 곧 책으로 나올 이 작품에 앞서 장씨의 다른 장편소설 『앨리스의 생활방식』(민음사)이 최근 출간됐다. 2004년 등단해 소설집 한 권을 낸 장씨, 요즘 손바람을 내고 있다.

『앨리스…』 역시 ‘이상한’ 이야기다. 10년 넘게 아파트 문 밖으로 한 발짝도 나오지 않는 한 여인이 있다. 여인은 현관문 아래쪽에 뚫린 우유 배달 구멍을 통해 마트 직원이나 같은 동 주민들에 의해 생필품을 공급받고 생활 쓰레기를 배출한다. 이런 사정을 모르고 여인의 맞은편 집인 306호로 독일어 번역가 민석이 이사온다. 다짜고짜 인터폰을 통해 이런저런 심부름을 시키는 여인의 정체가 궁금해 처음에는 몸살을 앓던 민석은 차츰 애정 섞인 호감을 갖게 된다. 알고 보니 여인에게는 지독한 정신적 상처가 있었다.

결국 세상이 두려워져 은둔을 자처한 것인데, ‘앨리스’라는 닉네임으로 불리기를 원하는 여인은 인터폰을 통해서나마 바깥 세상과 소통하려 한다는 점에서 상태가 극단적이지 않다. 때문에 소설은 어둡지 않다. 인물들의 튀는 대화, 장씨의 만만치 않는 독서량이 드러나는 문장도 읽는 맛을 더한다.

지난달 25일 전라도 광주에서 서울을 찾은 장씨는 “끊임 없이 손 내밀어도 대답은 없는데 계속해서 손 내미는, 그런 얘기를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앨리스의 아파트처럼, 고립된 공간을 떠올리면 소설적 상상력이 활발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장씨는 “말하는 게 귀찮아질 정도로 방에 틀어박혀 책 읽고 글쓴다”고 했다. 휴대전화도 신용카드도 가져본 적이 없다는 장씨 본인이 앨리스를 닮았다.

글=신준봉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