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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 ‘풋백옵션 딜레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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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기업 인수합병(M&A) 때 활용되는 금융기법인 풋백옵션(Put Back Option)이 수술대에 올랐다. 김광수 금융위원회 금융서비스국장은 2일 “과도한 풋백옵션이 금융회사의 건전성까지 위협할 수 있어 그에 대한 개선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날 진동수 금융위원장도 국회 업무보고에서 풋백옵션의 개선책 마련을 약속했다.

대우건설을 인수한 금호아시아나처럼 과도한 풋백옵션이 그룹 계열 회사는 물론 돈을 빌려준 금융회사의 부실로 이어지는 고리를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금융위가 풋백옵션을 수술대에 누이긴 했지만 막상 칼을 대지는 못하고 있다. 풋백옵션에 대한 규제가 M&A 시장을 위축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는 당사자 사이의 사적 계약을 정부가 왜 규제하려 드느냐는 논란도 금융위로서는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풋백옵션에 발목 잡히다=풋백옵션은 투자자가 일정 시점에 주가 등 기업가치가 정해진 수준 이상에 이르지 못할 경우 주식을 M&A 인수자에게 되팔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대우건설 인수에 참여한 투자자들이 2일 현재 주당 1만2850원에 불과한 대우건설 주식 39.6%를 올 연말에 주당 3만1500원에 금호에 되팔 수 있도록 한 게 전형적이다. 금호가 어렵사리 인수한 대우건설을 다시 팔겠다고 나선 것도 풋백옵션을 해결할 방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산업은행과 금호는 3일부터 대우건설 공개매각을 위한 실무협의를 시작한다.

풋백옵션이 무조건 덫이 되는 건 아니다. 진로를 인수한 하이트그룹, 하이마트를 인수한 유진그룹 등도 투자자들에게 풋백옵션을 부여했다. 하지만 풋백옵션을 받아주는 데 필요한 자금 부담이 금호에 비해 크지 않다.

이처럼 인수기업들이 자칫 ‘독배’가 될 수도 있는 풋백옵션을 받아들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투자증권 투자은행사업부 조만철 부장은 “인수 자금이 부족할 경우 풋백옵션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며 “큰 규모의 M&A에선 대부분 풋백옵션이 딸려 있다고 봐도 좋다”고 말했다. 지금까진 시장 상황이 좋아 풋백옵션이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다 금호의 경우 글로벌 금융위기로 주가가 급락하고, 자금 시장이 경색되면서 풋백옵션이 독약으로 변해 버린 것이다.

◆대책 마련 나섰지만=일각에선 은행들이 M&A에 투자할 때 투자 비율의 상한선을 두는 등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금융위는 시장에 대한 직접적인 규제는 힘들다는 입장이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위 관계자는 “은행 등 특정 투자자에 대해서만 투자를 제한하거나 풋백옵션의 비율 등을 규제할 경우 시장에 대한 과도한 개입이 될 수 있다”며 난색을 표했다.

금융위는 오히려 구조조정을 촉진하기 위해 다양한 M&A 활성화 방안을 준비 중이다. 대신 금융위는 금융회사의 M&A 투자 내역을 보고받아 건전성을 따지는 방식으로 금융회사에 대한 감독을 강화할 예정이다. 또 주채권은행이 인수기업의 자금조달 능력이나 재무구조에 대한 평가를 강화하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자본시장연구원 권세훈 연구위원은 “최소한 자산관리공사 등 공적 기관이 보유 기업을 매각할 때는 과도한 풋백옵션의 적용 여부를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그러나 시장에 대한 직접적인 규제는 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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