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여름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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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그곳엔 장마가 없다. 몬순의 지겨움도 머물지 않는다.

온통 물이지만 흙탕물 억수는 아니다. 산복도로의 아이들처럼 싱싱하다.

무얼 보려고 다이빙을 하는 걸까. 풍덩 - . 동심원은 파도에 밀려 금방 사라진다. 하지만 바다는 껍질만 반짝인다.

속은 깜깜하다.

물길은 쉼없이 흐르지만 어디로 가는지 알 길이 없다. 어둡다, 무섭다.

새우처럼 등 굽혀 흐름을 잡으려고 해도 오락가락,가락오락이다.

그렇다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걸까. 바다는 밤에도 영롱하다.

야릇한 색깔을 담고 다니다가 물고기에 한점, 바닷풀에 한점. 또다른 한점.한점. 신비롭게 자란다.

간혹은 산호에 걸려 멈춰서는 물길. 이번엔 헤아릴 수 없는 색깔을 쏟아내고 떠난다. 불빛을 들이대니…. 마구 흩어진다.

관능적이다. 욕망이 꿈틀거린다.

어떻게 해 볼 수 없을까. 저기 괴상망측하게 생긴 놈을 붙들고라도. 이 시커먼 가슴을 털어내고 나면 좀 후련해질까 몰라. 아니 투명이진 않을까. 그대로 서 있다.

결코 녹슬지 않는다. 이 장마가 끝나고 여름날마저 뜨거움을 잃어갈지라도 바다는 여전하다. 속은 어두워도 아름답다.

흘러가도 쓸쓸하지 않다.

추억처럼, 망명정부의 지폐처럼….

사진 = 말레이시아 랑카양 섬에서 장남원 <수중촬영전문 사진작가>

글 = 허의도 기자

수중 사진작가 張南源

48세. 중앙일보 사진기자로 20년 근무. 종군기자로 소말리아와 르완다의 내전 참상을 생생하게 보도했다.

올해 초에는 세계 수중사진가들이 인터넷 파비오를 통해 뽑는 '베스트 6인' 에 선정됐다.

저서로는 '물속에는 물고기만 사나' 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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