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빈 칼럼]DJ식 통일해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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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난 한주는 새 정부의 대북 (對北) 정책이 한차례 통과의례를 치르는 중대한 고비였다.

정확히 표현하면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의 대북정책이 국민적 심판대에 오른 한주였다.

햇볕론으로 대표되는 DJ식 통일해법이 잠수정 침투라는 북풍속에서 어떻게 반응할지를 살피는 중요한 기회이기도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DJ식 통일해법이 일단 통과의례를 치러냈다고 나는 평가하고 싶다.

유화 아니면 강경 일변도의 단선구조 통일정책에서 벗어나 햇볕과 강풍이라는 양날개 정책으로 전환하겠다는 정부의 강한 의지가 보수여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먹혀들었다는 데 첫번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이런 정책전환을 가능케 한 국민의 통일의식 전환이 두번째 들 수 있는 변화요인이다.

총성 없는 교류.협력이 전쟁 억지력을 지닐 수 있다는 가시적 가능성을 금강산개발사업에서 보고 있기 때문에 잠수정 침투 하나로 국민여론이 온.냉탕을 헤맬 수 없다는 공감대가 어느 정도 형성됐다고 본다.

또 그렇게 된 데는 몇해 동안 계속된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같은 여러 종교.시민단체의 통일운동이 일상화 작업으로 저변에 확산된 것도 한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돌이켜보면 YS식 통일접근은 극단적 두 정책이 엇갈리고 마주치는 전형적 갈등기 정책이었다. 대통령 취임초 이인모 (李仁模) 노인을 되돌려보낸 화해정책을 펴자마자 이튿날 북은 핵비확산조약 (NPT) 탈퇴를 전격적으로 선언했다. 화해무드는 하루 아침에 강경대처로 돌아섰다.

비슷한 갈등은 해마다 벌어졌다.

남북정상회담 제안으로 화해 물꼬가 트이는 듯하더니 조문파동으로 서로가 으르렁거리는 적대관계로 표변했다. 쌀을 실은 배가 들어가자 인공기 강제게양사건이 일어나면서 쌀을 주고도 고마운 소리 한번 듣지를 못했다.

이런 온.냉탕식 대북관계는 이번 잠수정사건에서도 되풀이될 소지가 충분했다.

침투요원이 소수였고 자폭을 했기에 사건이 빠른 시간안에 종결되긴 했지만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은 아직도 여진으로 남아 있다.

문제는 잠수정 아닌 잠수함급이 소대급 이상 공비를 싣고 출몰했을 때도 햇볕론이 무사히 버틸 수 있겠느냐는 점이다.

교류.협력과 안보라는 양축을 기반으로 한 햇볕론이긴 하지만 군사적 도발에 대한 대응이 약한 게 햇볕론의 약점이다.

이를 어떻게 보완할 것인가. 남과 북은 하나이자 둘로 보고 둘인 동시에 하나로 봄으로써 분단체제를 바로 볼 수 있다고 주장해 온 백낙청 (白樂晴) 교수가 최근 '흔들리는 분단체제' 라는 저서를 냈다.

그는 IMF체제와 분단체제를 동시에 극복하기 위해선 통일사업 주체의 다원화가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북한동포돕기운동 같은 운동의 활성화와 대기업의 경협활동을 강조하고 있다.

단순한 동포애 차원을 넘어 민족 내부의 교역을 통해 내수시장의 활성화와 경제활동의 숨통을 트는 계기로 삼으면서 통일사업 주체의 다원성을 확보하자는 것이다.

통일사업의 다원화는 곧 통일정책의 다각화를 뜻한다. 분단의 벽은 휴전선에만 있는 게 아니다. 휴전선에 있다고만 볼 때 통일정책은 단선구조다.

강풍 아니면 햇볕뿐이다. 유화정책 아니면 흡수통일뿐이다.

여기서 벗어나려면 정책이 복선구조로 이뤄져야 하고 사업주체도 다양화돼야 한다.

경협의 주체인 대기업도 통일사업의 주체고 이산가족 상봉을 추진하려는 방송사나 언론단체도 통일사업의 주체여야 한다.

통일사업은 정부만이 주도하는 사업이 아니라 대기업.시민.종교.언론단체 모두가 힘을 합칠 때 가능하고 그 힘이 모여야 북의 우발적 무력도발을 억제할 수 있다.

한편 통일사업 주체의 다원화는 정부역할의 축소로 비쳐질 수 있다.

실제로 햇볕론 자체가 군사적 대응과 교류협력을 동시에 포함하고 있지만 이번 사건에서처럼 지나치게 신중론을 앞세우면 정부역할의 축소로 오인될 수 있다.

실제로 유엔사.북한의 장성급 회담이 열렸지만 사과와 재발 방지를 받아내는 데는 역부족이다.

이런 일이 되풀이되면 햇볕론이 힘을 쓸 수가 없다.

정부당국자간의 직접대화 통로를 열어 따질 것은 따지고 받아낼 것은 받아내는 상시적 직접대화 창구를 개설해야 한다.

여기에 국군의 현대화와 심도 깊은 북한정보의 수집, 군사적 돌출사고에 대한 억지력 확보, 남북 군사당국자간의 회담 등을 제도적 장치로 보완해야 강한 햇볕론이 될 수 있다.

권영빈(논설위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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