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땅에 떨어진 퇴출은행 윤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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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아무리 억울하다고 느껴도 퇴출은행의 업무 인수인계를 조직적으로 방해하는 것은 은행의 윤리성을 스스로 팽개치는 행동이다.

자본잠식이 다된 은행에서 직원들끼리 퇴직금을 나눠 갖고 거래문서를 파기하고 전산시설 양도를 거부하는 행위 등은 시장거래질서를 근저에서 흔드는 일이다.

금융업의 생명은 거래 신뢰관계의 유지에 있다.

부실경영을 일삼아 퇴출은행의 주식을 갖고 있던 수많은 주주와 거래기업에 미친 피해에 대해서는 일말의 사과도 없이 돈 몇푼 챙기느라고 직업윤리를 저버리는 행태는 당장 중단돼야 한다.

금융기관이나 기업이 경영 잘못으로 파산하고 다른 기업이나 은행에 인수되는 것은 시장경제에서는 다반사로 일어난다.

이웃 일본의 야마이치증권의 사장이 파산을 발표하면서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고 울면서 직원에 대한 선처를 부탁하는 자세를 왜 우리는 볼 수 없는가.

파산하는 배에서 선장과 고급선원들이 저 먼저 살겠다고 구명정에 먼저 타겠다면 어찌 되는지 우리는 현실에서 똑똑히 목격하고 있다.

이런 무책임한 사람들한테 공신력이 생명인 은행의 경영을 맡겼다는 것이 한심할 뿐이다.

아무리 시간이 촉박했다고 해도 감독당국이 책상앞에서 인수를 위한 도상연습만 하고 실제 나타날 수 있는 저항을 과소평가한 것은 문제로 지적할 수 있다.

퇴출당하는 은행원의 불만은 부실의 근원적인 책임이 관치나 정치금융에 있었다는 것이다.

사전에 충분한 대화를 통해 이같은 주장에 대해서는 자신들이 속한 은행의 부실상태를 낱낱이 보여주고 왜 정리될 수밖에 없는가를 설명하는 노력이 있었으면 불필요한 저항을 최소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과거에 잘못된 관치금융을 시정하자는 것이 구조조정의 목표라는 점을 고객에게도 설명했어야 했다.

그러나 구조조정을 공개적으로 진행시킬 수 없는 특수한 상황이라는 점은 우리 모두가 받아들이고 우리 사회가 경험해보지 못한 은행의 정리과정을 통해 전체 사회가 교훈을 얻어야 한다.

당국은 조기에 사태를 수습하고 만일의 경우 발생할지 모르는 금융경색을 막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필요하면 검찰의 협조를 얻어 신용질서를 조직적으로 방해하는 사람을 가려내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퇴출되는 은행의 종사자들은 이런 식으로 항의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을 통해 당당하게 재취업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 옳다.

인수은행이 상당수의 인력에 대한 고용승계를 약속했으니 옮겨가서 미래를 계획하는 합리적인 자세를 보여야 한다.

경제가 살아나야 그 고용승계도 정착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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