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구상 따로 추진 따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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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국경제 비효율의 대명사로 상징되는 공기업은 공공부문 개혁의 성패를 가름할 시금석이다.

정부는 포철.한국중공업 등 5개 주요 공기업과 이들의 21개 자회사를 내년까지 매각하고, 한전.한국통신.담배인삼공사 등은 2002년까지 단계적으로 민영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미 5년전 김영삼 (金泳三) 정부가 출범하면서도 거창한 공기업 민영화 계획을 공표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일부 공기업의 지분매각을 제외하고는 지지부진한 상태를 면치 못했다.

이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번 정부의 공기업 개혁에 대해서도 반신반의하고 있다.

정치권과 행정부가 정치적.관료적 이해관계를 떨쳐버리고 노조의 반발을 극복하면서 공기업 개혁을 끝까지 추진할 의지와 역량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공기업 개혁은 공룡으로 비유되는 공공부문을 혁파하고 국민경제의 경쟁력을 복원하는 데 있어 선결과제라는 점에서 공기업 개혁의 방향과 내용에 대해서는 이미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공기업 개혁에 관한 한 구도를 어떻게 짜느냐도 문제지만, 그러한 구도를 어떻게 실천하고 난관을 극복하느냐가 그 요체라고 할 수 있다.

정부 투자기관.정부 출자기관.재정지원기관.자회사.공단 등은 불황을 모르는 관료산업군의 외곽으로 정치권.행정부와 함께 '철의 삼각지대' 와 같은 공생 (共生)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로 인해 공기업 개혁과정에서 해당 부처와 정치권은 총론에는 찬성하지만 자기 손가락 자르는 아픔을 감내하기를 거부하면서 해당 공기업과 한편이 돼 '자기 새끼 챙기기' 식으로 감싸고 도는 감이 없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민영화를 포함한 공기업 개혁의 틀은 기획예산위원회에서 마련하고, 추진을 주무부처에 일임토록 한 것은 과거의 공기업 개혁 실패를 반복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자아내게 한다.

개혁 구상과 그 추진을 별도의 기구에서 다루도록 하는 것은 마치 '밑그림 따로, 색칠 따로' 식으로 그림을 그려 작품을 망치는 것과 같다.

이해관계를 공유 (共有) 하고 있는 주무부처로 하여금 산하 공기업의 개혁을 추진토록 할 때 '다음 정권때까지 버티자' 는 식으로 개혁 추진이 지연되거나 축소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결국 개혁 추진의 성패는 해당 공기업의 이해관계를 초월한 중립적 공기업 개혁추진기구가 개혁의 집행과정을 얼마나 직접 챙기고 지속적으로 점검하느냐, 그리고 이를 정치권이 제대로 뒷받침해주느냐에 달려 있다.

특히 한국적 정치문화아래서는 대통령이 공기업 개혁에 대한 저항의 바람막이 역할을 자임하고, 개혁 과정을 끝까지 확인하는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편 공기업 개혁을 추진함에 있어서는 정부보유 주식의 국내외 매각에 집착해서는 안되고, 해당 기업에 대한 정부의 간섭과 관여를 배제하는 가운데 자율경영에 기초한 책임경영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특히 전문 경영인이 제대로 선임되고, 이들이 정치권의 변화로부터 자유로이 경영혁신에 매진할 수 있는 장치와 여건이 마련돼야 한다.

이와 함께 공익산업부문에 도사리고 있는 경영진과 종업원의 '도덕적 해이' 를 제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보강해야 한다.

가령 적자경영을 면치 못함에도 높은 보수 수준을 유지하거나 빚으로 퇴직금을 지불하는 등 국민들이 납득할 수 없는 일을 방관해서는 안된다.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이 투혼을 쏟아부었던 민주화 여정이 미국 순방외교에서 진가를 발휘했듯이, 공공부문 개혁이 경제적 난국에 처해 있는 한국의 새로운 히트 상품으로 세계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노조를 비롯한 공기업 당사자들의 슬기로운 대처가 긴요한 때다.

오연천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재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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