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통령 대북정책 전망]유연하게 '햇볕정책'유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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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북한 잠수정의 우리 영해 침범사건에 대해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은 '신중' 을 강조하고 있다.

金대통령은 사건발생 하루가 지났는데도 사건의 성격을 규정할 만한 어떤 얘기도 하지 않았다.

'침투' '도발' 등의 표현은 쓰지 않고 그냥 '사건' 이라고 했다.

金대통령은 23일 국무회의에서는 "도발인가, 정찰인가, 훈련중 표류인가를 파악해야 한다" 며 '신중대처' 를 당부했다.

국군 모범용사를 접견한 자리에서는 "남북문제의 평화적 해결" 을 역설했다.

金대통령은 잠수정 조사가 끝난 뒤에야 입장을 밝힐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사건처리 가닥은 이미 잡혔다.

임동원 (林東源)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군사적 사건으로 국한시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치.경제문제와는 연계하지 않겠다는 입장인 것이다.

林수석은 "과잉반응할 필요가 없으며 이번 사건을 정략적으로 이용할 생각도 없다" 고 말했다.

그는 96년 북한 잠수함의 강릉침투 사건 때 '김영삼정부' 가 과잉반응했기 때문에 남북, 한.미관계가 악화됐다는 주장도 폈다.

당시 정부는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지도 못한채 무조건 대북 강경일변도로 나갔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그때처럼 성급하게 나가 나중에 유연성을 발휘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군사적 측면에선 북한의 정전협정 위반을 엄중 항의하고 따질 작정이므로 정부가 물렁하게 대처하는 것은 아니라는 게 청와대측 설명이다.

청와대는 그러나 북한을 몰아붙이는 수위는 아직 정하지 못했다.

잠수정에 대한 조사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林수석은 "북한의 군사적 도발의도가 명백하게 드러나지 않은 상황이므로 아직 사과를 요구하는 단계는 못된다" 고 말했다.

청와대가 신중론을 펴며 군사적 처리를 강조하는 것은 곧 金대통령의 대북 포용정책인 '햇볕정책' 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林수석은 잠수정 사건을 "북한이 통상적으로 해오던 행위로 앞으로도 있을 것" 이라며 "그런 것을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포용정책을 더욱 강화할 것" 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정경분리 차원의 대북 교류.협력도 계속 진행될 것임을 확인하면서 "대북관계에선 인내심이 필요하다" 고 역설했다.

청와대는 그러면서도 여론변화에 상당히 신경쓰는 눈치다.

林수석은 "이번 일로 보수세력이 햇볕정책을 비판할 것으로 보이지만 흔들리지 않을 것" 이라면서도 정주영 (鄭周永)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금강산 개발사업 승인문제와 남북 교류.협력 촉진을 위한 법개정 문제 등에 대해선 "상황을 봐야…" 라며 비켜갔다.

林수석은 사건발생 전만 해도 법의 고리를 풀 것을 시사하는 등 상당히 전향적이었다.

林수석의 이같은 태도는 햇볕정책을 유지하더라도 속도는 조절될 수 있을 것임을 뜻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향후 남북관계도 이 속도와 관련이 있다.

정부는 잠수정 조사결과 북한의 도발의도가 드러날 경우 군사적으로 사과를 요구하고, 교류.협력 속도도 늦출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북한의 극렬한 반발로 남북관계가 한동안 경색될 공산이 크다.

반면 북한 잠수정 사건이 그들의 주장처럼 '단순사고' 에서 비롯한 것으로 귀결되거나, 일상적인 정찰행위나 훈련행위를 한 것으로 인정돼 우리측이 부드럽게 처리할 경우 아이로니컬하게도 남북관계는 빨리 원상회복될 수 있다.

'오히려' 가속도가 붙을 수도 있을 것이다.

현재 돌아가는 품새로 미루어 이 가능성이 더 클지도 모른다.

이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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