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의 길’ 걷는 세계 지도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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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등 성공적으로 국정을 이끌어 가는 국가 지도자들은 중도를 표방하고 있다. 이들은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중도 실용 노선을 걸어 지지 세력으로부터 비판받기도 한다. 그러나 가장 많은 국민이 속한 중도 세력에 지지 기반을 마련함으로써 높은 지지도 속에 자신 있게 국정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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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길’ 걷는 오바마=워싱턴 포스트(WP) 칼럼니스트인 E J 디온은 최근 칼럼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제3의 길을 걷고 있다”고 진단했다. 민주당 출신에 진보 성향이면서도 필요하면 보수적인 공화당의 정책도 수용하려고 애쓰기 때문이다. 오바마의 중도 노선은 정책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오바마는 알카에다 요원 등 테러 혐의자를 수감한 관타나모 수용소를 폐지하겠다고 밝히면서도 보수주의자의 안보 불안을 덜어 주려 힘쓴다. 또 경제위기를 초래한 금융기관들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면서도 시장을 중시하는 미국식 자본주의를 고수하고 있다. 지지 기반인 노조 등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보호주의 장벽에는 반대한다. 그는 인사에서도 공화당 출신들을 장관에 기용했다. 부시 행정부 때 임명된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을 유임시킨 데 이어 공화당 하원의원인 레이 러후드와 존 맥휴를 각각 교통·육군장관에 임명했다.

그의 중도 노선은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다. 최근 갤럽 조사에서 오바마 지지율은 60%에 이르렀다. 그렇다고 그가 박수만 받는 건 아니다. 일부 진보주의자는 “개혁이 뜨뜻미지근하다”, 일부 보수주의자는 “오바마는 사회주의자”라고 비판한다. WP는 최근 “오바마의 성공 여부는 진보·보수 사이의 적절한 균형 유지에 있다”고 진단했다.


◆시장 중시하는 룰라=2002년 브라질 대선에서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후보의 대통령 당선이 유력시되자 브라질 증시는 폭락하고, 화폐 가치는 곤두박질쳤다. 노동자 출신의 좌파인 룰라가 당선되면 반시장 정책을 펼칠 것이란 우려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룰라는 취임 직후부터 시장의 불신을 해소하는 데 앞장섰다.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를 시장주의자로 임명했다. 또 긴축 재정을 실시하고, 노동자 복지 혜택을 줄였다. 지지층인 노동자들의 반대에 직면하자 룰라는 “서민을 위해선 경제라는 파이를 키워야 한다”고 설득했다. 성장 우선 경제 정책은 브라질 경제를 되살렸다. 적자 재정이 흑자로 바뀌면서 예정보다 2년 빨리 국제통화기금(IMF) 부채를 갚았다. 물가가 안정되고, 경제는 연 5% 정도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일자리가 늘고, 사회가 안정되면서 룰라의 지지율은 최근 81%(브라질 여론조사기관 CNT 조사)로 역대 브라질 대통령 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좌우 허무는 유럽=좌우 구분이 명확한 유럽 정치판에서도 최근 양측 벽을 허물고 ‘실용’을 중시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우파지만 내각에는 좌파와 중도파가 많다. ‘국경 없는 의사회’를 만든 좌파 정치인 베르나르 쿠슈네르는 외무장관, 중도파 에르베 모랭은 국방장관이다. 정책 입안에서부터 정치색을 없애고 최상의 정책을 만들겠다는 의도다. 프랑스에서는 2007년 대선에서 사실상 처음으로 중도 노선을 표방한 후보인 프랑수아 바이루가 큰 지지(19% 득표)를 얻기도 했다. 스웨덴의 우파 정치인인 프레드리크 레인펠트 총리는 대표적 좌파 정책인 사회보장제도를 대수술했다. 실업·병가수당 지급을 까다롭게 해 ‘복지 중심’ 정책을 ‘일 중심’ 정책으로 전환한 것이다. 그리고 남는 예산을 좌파 정책인 실업자 구직 시스템 개선에 투자해 중도를 택했다. 덴마크 정부는 외자 유치 활성화를 위해 국내 노동시장 유연화에 힘썼다. 실직자에게는 퇴직 전에 받던 급여의 90%까지 보장해 주면서 새로운 직업을 적극 알선했다. 이 정책으로 덴마크는 10여 년간 고성장, 저실업, 외자 유치 투자 증대 등을 누렸다.

 정재홍 기자, 파리=전진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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