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우며 배우며 … 충무로영화제 3인 3색 자원봉사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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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8월 말 막을 올리는 충무로국제영화제. 배우만 영화제를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다. 350명의 자원봉사자가 ‘조연’이다. 3883명이 지원해 11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시간도 많이 뺏기는데 자원봉사에 나서는 이유가 뭘까.


김혜린(21)씨는 KAIST IT경영학과 4학년이다. 대학원 입학 준비에 계절 학기 강의도 들어야 하지만 그는 방학을 이용해 자원봉사를 하기로 결심했다. 김씨의 자원봉사 이력은 제법 오래됐다. 고등학교 때는 일주일에 한 번씩 복지원에서 장애 아동 2명에게 영어를 가르쳤다.

2년 전부터는 대전 전민동의 ‘사랑빛 아동센터’와 인연을 맺고 저소득층 아이 7명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학업에 대한 부담으로 그만둘까 생각했지만 아이들의 또랑또랑한 눈빛이 눈에 밟혀 지금도 일주일에 두 번씩 아이들을 가르친다. “힘든 일이 있어 표정이 안 좋으면 아이들이 금세 알아채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나를 위로해 줘요.”

김씨에게 봉사활동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기쁨과 책에서 배울 수 없는 가치를 가르쳐 주는 ‘선생님’이다. 이번 영화제에서는 영어실력을 살릴 수 있는 수행통역 분야를 지원했다. 외국에서 온 초청객을 위해 통역한다는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

64세의 김철진씨는 신청자 중 최고령이다. 하지만 그는 “감각만큼은 30대”라고 주장한다. 홍익대 공예디자인과를 졸업한 그는 1977년 롯데백화점에 입사해 20년간 근무하면서 디자인 담당 이사를 지냈다. 은퇴 이후 봉사활동으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그는 7년 전부터 아마추어 합창단에서 활동하며 홀로 사는 노인과 장애인을 위해 무료 순회 공연을 한다. 그는 “열정을 가진 사람끼리 만나 다른 사람에게 그 열정을 나눠줄 수 있는 것이 더할 나위 없이 기쁘다”고 말했다.

합창을 하다가도 흥이 나면 장미꽃을 물고 탱고를 추곤 한다. 영화제에 봉사활동을 지원한 이유도 자신의 이러한 ‘끼’를 살리고 싶어서다. “디자인 관련 일을 하면서 쌓은 경험에다 공연을 하면서 발견한 순발력과 재치를 발휘해 보고 싶다”는 게 지원 동기다. 그래서 국제행사를 진행한 경험을 살리면서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사업운영’ 분야에 신청서를 냈다. 그는 영화제를 ‘젊음’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 젊은 사람이 많이 참여할 뿐 아니라 한 편의 영화가 만들어지기까지 들어가는 수많은 사람의 열정이 바로 젊음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젊은이들에게 뒤지지 않는 열정으로 내 인생의 2막을 채워 나갈 것”이라며 각오를 다졌다.

건국대 영화학과 4학년인 리우시징(26·중국)은 요즘 졸업 작품 영화를 찍느라 정신이 없다. 그래도 영화제 자원봉사 신청을 빠뜨리지 않고 챙겼다. 영화제 봉사만 벌써 세 번째다. 서울국제영화제,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도 수행 통역을 했다. 그에게 영화제는 꿈을 키우고 닦는 곳이다. 그는 영화 감독이 되고 싶어 영화·드라마 등으로 친숙한 한국으로 4년 전 유학을 왔다. 그러다 영화제에서 자원봉사를 하면서 프로듀서로 꿈을 바꿨다. 자기 혼자만의 고독한 작업인 영화감독 대신 시나리오를 발굴하고 제작비를 모으고 배우를 섭외하는 활동적인 일이 적성에 맞는다는 걸 깨달았다.

리우시징은 배우와 감독을 만나는 것을 영화제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영화가 만들어지기까지의 모든 과정에 대해 생생한 경험담을 들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설명이다. 영화제를 통해 그는 자신의 꿈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다. “언젠가는 저도 이 무대에 설 날이 꼭 올 겁니다. 하하하.”

글=김경진, 사진=안성식 기자

◆충무로국제영화제=1950년대 이래 한국영화의 메카로 자리잡은 ‘충무로’에서 열리는 국제 영화제. 올해 3회째로 지난해는 300만 명 이상이 참가했다. 올해는 ‘어제 오늘 그리고 미래’라는 주제로 34개국의 214편의 작품이 상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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