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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 이긴 어머니의 사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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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나는 청각장애아를 키우는 엄마다. 6년 전 태어나자마자 선천성 식도폐쇄로 수술대에 올랐던 아이는 퇴원 전 검진에서 난청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보청기 없이는 일상생활이 불편하다는 의사의 통보를 받는 순간 세상은 말없이 무너져 내렸다. 장애의 경중을 떠나 자식의 장애라는 현실을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았다. 넉 달 뒤 아이의 작은 귀에 보청기를 끼우던 날, 나는 또다시 눈물을 흘렸다. 돌이켜 보면 그때는 아이에 대한 애처로움보다는 ‘장애를 가진 아이를 내가 제대로 키울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이 더 컸던 것 같다.

한 해 두 해 지나면서 아이는 잘 자라줬다. 요즘은 “엄마 사랑해”라는 아이의 말 한마디에 세상 시름을 잊는다. 그러다가도 불현듯 ‘아이가 훗날 자신을 스스로 부정하지는 않을까’ ‘장애인에게는 가혹한 사회에서 어떻게 커나갈까’ 같은 걱정이 마음을 누른다.

이달 초 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에서 열린 반클라이번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한 시각장애인 쓰지이 노부유키(<8FBB>井伸行·20)의 부모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쓰지이의 어머니 이쓰코(49)는 ‘훗날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 후회하거나 원망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가장 컸다고 했다.

하지만 이쓰코는 아이를 장애아답게 키우는 대신 ‘노부유키답게’ 키우기로 했다. 아들을 집에만 틀어박혀 있지 않게 하면서 새로운 사물과 만나게 하고, 세상을 온몸으로 느끼게 했다. 두 살 때 어머니가 부른 크리스마스 캐럴의 멜로디를 장난감 피아노로 정확하게 따라 연주한 그를 보고 정식으로 피아노를 가르쳤다. 음악뿐 아니라 모든 감성을 풍부하게 하는 것이 음악가로서의 인생을 풍요롭게 한다고 판단한 이쓰코는 앞 못 보는 아들의 손을 끌고 미술관에 다녔다. 아나운서 출신인 어머니는 작품 하나하나의 색, 모양, 그림의 내용, 느낌을 아들에게 전해줬다. 여름 불꽃놀이 축제 때도 함께 군중 속에 서서 하늘 위 폭죽의 화려한 색과 움직임을 아들 마음에 그려줬다. 아들은 “불편한 건 없었다. 어머니를 통해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즐겼다”고 했다.

중3 미국 연주회 때 경험한 뉴욕의 크리스마스 풍경,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라는 작품에서 받은 영감은 그가 작곡한 작품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10세 때 오사카 센추리 교향악단과 협연하며 데뷔한 쓰지이 노부유키는 2005년 17세 최연소의 나이로 출전한 쇼팽 콩쿠르에서 비평가상을 받으면서 국제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반클라이번 콩쿠르 우승으로 그의 음반은 일본 최고 권위의 음반 판매집계 차트인 오리콘에서 2위를 기록했다.

우승 트로피를 안고 귀국한 아들은 “한 번만 눈을 뜰 수 있다면 무엇을 보고 싶으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망설임 없이 “어머니의 얼굴”이라고 답했다. 곁에 있던 어머니는 “내 아들로 태어나줘서 고맙다”며 눈물을 흘렸다. ‘(장애인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낸 어머니의 헌신과 사랑은 그렇게 보상받았다. 장애아를 둔 세상의 모든 부모에게 용기를 심어준 쓰지이 모자에게 감사의 박수를 보낸다.

박소영 도쿄특파원